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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기누스

롱기누스(Longinus)는 고대 로마와 기독교 전통에서 여러 인물 및 개념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이 이름은 그리스어 λόγχη(론케, '창'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Gaius Cassius Longinus, 기원전 85년~기원전 42년)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인이자 군인.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의 주동자 중 한 명이며,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매제였다. 기원전 53년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휘하에서 재무관으로 복무하였고, 카르하이 전투에서 크라수스가 파르티아에 패배할 때 간신히 탈출하였다. 이후 폼페이우스 편에 서서 카이사르와 내전을 치렀으나 파르살루스 전투 이후 항복하였고, 카이사르로부터 용서받았다. 그러나 기원전 44년 브루투스 등과 함께 카이사르를 암살하였다. 이후 제2차 삼두정치에 의해 필리피 전투에서 안토니우스-옥타비아누스 군과 싸우다 패배한 후 자살하였다.

2. 롱기누스 (Longinus, 성 롱기누스)

기독교 전통에서 예수의 십자가형 당시 창으로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로마 군인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정경 복음서(요한복음 19장 34절)에는 이 군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외경인 《니코데모 복음서》에서 처음으로 롱기누스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후대 전승에 따르면 그는 예수의 피가 눈에 닿아 시력을 회복한 후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으며, 이후 순교하여 성인(聖人)으로 추앙받았다.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등에서 성인으로 공경하며, 축일은 10월 16일(가톨릭), 3월 15일(구력) 등이다.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는 잔 로렌초 베르니니가 조각한 성 롱기누스 상이 있다.

3. 카시우스 롱기누스 (Cassius Longinus, 213년경~273년경)

고대 그리스의 수사학자이자 철학 비평가. 시리아 에메사 출신으로 추정되며, 알렉산드리아에서 암모니우스 사카스 밑에서 수학하였다. 아테네에서 30년간 가르쳤으며, 그의 제자로는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포르피리오스가 있다. 후에 팔미라의 여왕 제노비아의 고문이 되었으나, 로마 황제 아우렐리아누스가 팔미라를 정복한 후 처형되었다. 한때 《숭고함에 대하여》(Peri Hypsous)의 저자로 알려졌으나, 현재 학계에서는 이 저작이 1세기경의 다른 미상 작가에 의한 것으로 본다.

4.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Gaius Cassius Longinus, 1세기 법학자)

서기 1세기에 활동한 로마의 법학자이자 정치가. 서기 30년 집정관을 지냈으며, 아시아 속주 총독(40~41년)과 시리아 속주 총독(45~49년)을 역임하였다. 마수리우스 사비누스의 제자로 사비누스 학파(카시우스 학파)를 형성하였고, 주저 《시민법》(Libri juris civilis, 10권)의 일부가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에 인용되었다. 서기 65년 네로 황제에 의해 사르디니아로 추방되었으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 귀환하였다.

5. 플라비우스 롱기누스 (Flavius Longinus, 475~491년 활동)

동로마 제국의 정치가. 제노 황제의 동생으로, 486년과 490년 두 차례 집정관을 지냈다. 제노 사후 황제 후보 중 한 명이었으나 아나스타시우스 1세가 즉위하자 이사우리아에서 반란을 일으켰고(이사우리아 전쟁), 진압 후 이집트 테바이드로 유배되었다.

6. 롱기누스의 창 (Holy Lance / Lance of Longinus)

예수의 십자가형 당시 롱기누스가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는 창. 기독교의 중요한 성유물로, 현재 여러 개의 유물이 각지에 보존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오스트리아 빈 호프부르크 궁전의 제국 보물실,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아르메니아 바가르샤파트 등에 소장된 유물들이 있다. 중세 전승에서는 이 창이 소유자에게 승리를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있었으며, 제1차 십자군 당시 안티오키아에서 발견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대 대중문화에서는 '운명의 창'(Spear of Destiny)이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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