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타리오 2세(Lotario II, 920년/925년/926년? ~ 950년 11월 22일)는 중세 이탈리아의 왕(재위 947년~950년)이다. 이탈리아어 이름인 로타리오 2세 외에도 로타르 2세(Lothar II), 아를의 로테르(Lothair de Arles) 등으로도 불린다. 그를 이탈리아의 군주로 보는 관점에 따라 로타리오 3세(Lothario III)로 지칭되기도 한다.
로타리오 2세는 프로방스의 위그(이탈리아의 왕 우고)와 프랑코니아 출신 알다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한 적자였다. 그의 할머니 베르타는 로타링기아의 왕 로타르 2세의 서출 딸로, 카롤링거 왕가의 외손에 해당한다. 928년 아버지 위그가 이탈리아의 왕이 되면서 로마로 따라갔고, 931년부터 아버지와 공동 왕으로 즉위하였다. 947년 아버지 위그가 이브레아의 베렝가리오 2세에게 축출되어 프로방스로 유폐된 후, 로타리오 2세는 단독으로 이탈리아를 다스리게 되었다.
947년 6월 27일 이전에 부르고뉴의 루돌프 2세의 딸 아델라이드(아델하이트)와 결혼하였다. 당시 아델라이드는 15세였으며, 이 결혼은 부르고뉴 왕국과의 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정략적 성격을 띠었다. 948년경 딸 엠마가 태어났으며, 엠마는 이후 서프랑크의 왕 로타르 3세(로테르)와 결혼하여 서프랑크 왕 루이 5세를 낳았다.
그러나 로타리오 2세는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하지 못했으며, 이탈리아에서의 실권은 이브레아 후작 베렝가리오 2세가 장악하고 있었다. 로타리오 2세는 밀라노에 체류하며 명목상의 왕으로 남아 있었다. 950년 11월 22일 토리노에서 갑자기 사망하였는데, 일부 학자들은 베렝가리오 2세에 의해 독살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의 사후 베렝가리오 2세는 왕위를 찬탈하고 과부가 된 아델라이드를 자신의 아들 아달베르토와 강제로 결혼시키려 하였으나, 아델라이드는 독일 왕 오토 1세(훗날 신성 로마 제국 황제)에게 몸을 의탁하였다.
로타리오 2세의 사망으로 보조네 왕조(Bosonid dynasty)의 이탈리아 지배는 막을 내렸으며, 이후 이탈리아 반도는 오토 1세의 개입으로 신성 로마 제국의 영향권에 편입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후일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이 작곡한 오페라 《로타리오》는 이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