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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 셔우드 홀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년 9월 19일~1951년 4월 5일)은 미국의 의료 선교사이자 교육자로,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에서 의료 및 교육 활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생애와 교육 배경

로제타 셔우드 홀은 1865년 9월 19일 미국 뉴욕주 리버티(Liberty)에서 영국계 이민자인 로즈벨트 렌슬러 셔우드와 피비(옛 성씨 길더슬리브) 사이의 장녀로 태어났다. 1883년 오스위고 주립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지역 학교 교사로 일했다. 이후 인도 의료 선교에 관한 강연을 접한 것을 계기로 펜실베니아 여자 의과대학(현재 필라델피아 드렉설 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1889년 의학 학위를 취득하였다.

조선에서의 활동

1890년 감리교 여성 해외선교회(Woman's Foreign Missionary Society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에 의해 조선으로 파견되어, 이화학당이 운영하던 여성 전문병원 보구녀관에서 의료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의 전신인 시설에서 43년간 조선 여성의 의료 접근성 향상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92년 6월, 캐나다 출신 의료 선교사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과 결혼하였다. 남편 윌리엄 제임스 홀은 평양 지역에서 의료 선교 활동을 하다 1894년 사망하였으며, 로제타 셔우드 홀은 이후 평양으로 활동지를 옮겨 의료 사업을 이어갔다.

여성 의학교육과 특수교육 기여

로제타 셔우드 홀은 조선 최초의 여성 양의(洋醫)로 알려진 에스더 박(김점동)을 미국 유학을 통해 지원하고 성장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1928년 김태원 등 한국인 의사들과 함께 조선여자의학강습소(朝鮮女子醫學講習所)를 설립하여 여성 의료 인력 양성에 기여하였다.

특수교육 분야에서도 활동이 두드러진다. 1894년에는 시각 장애인 교육을 시작하여 자신이 고안한 점자 변형 방식을 활용해 시각 장애인 소녀에게 점자를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1909년에는 평양맹아학교(平壤盲啞學校)를 설립하였다. 이는 한국 최초의 장애인 특수교육 시설 중 하나로 평가된다. 또한 한국어 점자 체계의 최초 개발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년과 사후

1933년 조선을 떠나 은퇴한 이후, 1951년 4월 5일 미국 뉴저지주 오션그로브에서 사망하였다. 유해는 서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안장되었다. 아들 셔우드 홀(1893~1964) 역시 의사가 되어 조선에서 결핵 퇴치 활동 등 의료 봉사를 이어갔다.

저술

로제타 셔우드 홀은 남편의 생애를 정리한 《Life of Rev. William James Hall: Medical Missionary to the Slums of New York, Pioneer Missionary to Pyong Yang, Korea》(1897)를 편집·출간하였으며, 회고록 《with stethoscope in Asia: Korea》도 남겼다. 2021년에는 국가기록원이 그녀가 작성한 조선 여행 편지 136년 만에 공개·복원한 바 있다.

평가

로제타 셔우드 홀은 조선 말기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한국 여성의 의료 접근성 향상, 여성 의학교육의 토대 마련, 그리고 장애인 특수교육의 시작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된다. 종교적 선교 활동을 주 목적으로 하였으나 그 영향이 의료와 교육 분야에 광범위하게 미친 점에서 한국 근대 의료사와 교육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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