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텐 전투는 1757년 12월 5일, 7년 전쟁(1756~1763) 중 슐레지엔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프로이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대왕이 이끄는 프로이센군이, 로트링겐 공 카를 알렉산더가 지휘하는 오스트리아군을 상대로 결정적 승리를 거둔 사건으로, 유럽 군사사에서 프리드리히 대왕의 대표적 승리로 평가된다.
배경
프리드리히 대왕이 중부 독일에서 프랑스-신성로마 연합군을 상대로 로스바흐 전투를 치르는 동안, 오스트리아군은 슐레지엔을 서서히 탈환하고 있었다. 1757년 11월 28일 슐레지엔의 수도 브레슬라우(Breslau, 현재의 브로츠와프)가 오스트리아군에게 함락되자, 프리드리히는 신속히 군을 이끌고 로이텐(지금의 폴란드 루티니아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당시 프로이센군은 약 36,000명과 대포 167문이었고, 오스트리아군은 그 약 두 배에 해당하는 병력과 210문의 대포를 보유하고 있었다.
전투 경과
프리드리히는 오스트리아군의 중앙을 향해 진군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면서도, 기병대를 보르나(Borna) 마을로 돌격시켜 오스트리아군의 우익을 공격할 것처럼 위장하는 양동작전을 펼쳤다. 이러한 기동에 속은 오스트리아군은 예비대를 우익으로 이동시켰고, 그 결과 좌익이 약화되었다.
이 틈을 타 프로이센 보병대는 언덕의 능선 뒤에 은폐하며 남쪽으로 이동한 뒤, 오스트리아군의 좌익 측면을 향해 사선 대형(oblique order)으로 전환하여 공격을 감행하였다. 오스트리아군의 좌익은 프로이센군의 포격과 일제사격으로 급속히 붕괴되었다. 오스트리아군은 로이텐 마을 일대에서 재정비를 시도했으나, 전열이 과도하게 길게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재배치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프로이센군은 40분 만에 로이텐 마을을 함락하였고, 이후 프로이센 기병대의 돌격으로 오스트리아군은 완전히 무너졌다. 전투는 약 3시간여 만에 종료되었다.
결과 및 영향
이 전투의 승리로 프로이센은 슐레지엔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고히 하였고, 오스트리아군은 보헤미아로 퇴각하였다. 로이텐 전투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기동전술, 특히 적의 약점을 목표로 한 측면 공격과 양동작전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일부 군사학적 관점에서는 이후의 기동전(베베궁스크리크, 전격전) 개념의 선구적 사례로도 언급된다. 패배 이후 마리아 테레지아는 처남인 로트링겐 공 카를의 사직을 요구하였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 이론에서도 로이텐 전투는 추격전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이 전투는 유럽 역사에서 프리드리히 2세를 최고의 군사 전략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한 계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