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앙고 왕국(Kingdom of Loango, 콩고어: Nsi ya Loango)은 16세기 중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 오늘날 콩고 공화국 서부, 가봉 남부, 그리고 카빈다(앙골라) 지역에 걸쳐 존재했던 콩고계 바콩고(Bakongo) 민족의 국가이다. 수도는 부알리(Buali, 또는 음반사 로앙고/Mbansa Loango)였다.
기원과 설립
로앙고 왕국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으나, 16세기 중반 은짐베(Njimbe, 또는 Gembe/Gymbe)라는 인물이 카콩고(Kakongo) 지역에서 여러 소규모 정치체들을 통합하여 왕국을 건설한 것으로 전해진다. 네덜란드 지리학자 올페르트 다퍼(Olfert Dapper)가 17세기에 기록한 구전 전통에 따르면, 은짐베는 동맹과 군사적 수단을 통해 마윰바(Mayumba), 킬롱고(Kilongo), 피리(Piri), 완시(Wansi) 등의 소국들을 정복하고 왕국을 세웠다. 초기에는 콩고 왕국의 영향권 아래 있었으나, 1565년경 독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이른 시기의 문서 기록으로는 1561년경 콩고의 사제 세바스티앙 드 소투(Sebastião de Souto)가 디오고 1세 왕이 로앙고에 선교사를 파견했다는 언급이 있다.
정치 체제
로앙고 왕국은 전제군주제(absolute monarchy) 국가였으며, 왕은 신성한 권력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다. 은짐베는 카예(Kaye), 보케(Boke), 셀라주(Selage), 카방고(Kabango)의 네 개 주요 지방을 설치하고 각 지방의 통치자를 왕실 가문 구성원 중에서 임명하였으며, 왕위는 이 네 지방 간 순환 방식으로 계승되도록 하였다. 17세기 중반 이후 왕위 계승 규칙에 변화가 생겼고, 1787년 부아투(Buatu) 왕 사후에는 100년 이상 새로운 왕이 선출되지 못하는 공위기간(interregnum)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는 응앙가 음붐비(Nganga Mvumbi, 시신 사제)라는 직책이 실질적인 왕권을 대행하였다.
행정과 사회
왕국 중앙의 각 마을과 지역은 왕이 임명한 귀족이 통치하였으며, 왕은 다수의 참모(의회)를 두었다. 주요 관직으로는 외무를 담당한 마고보(Magovo)와 마푸토(Mapouto), 전쟁 장관 마카카(Makaka), 상업 장관 음푸카(Mfouka), 그리고 '수림(水林) 대관' 마킴바(Makimba) 등이 있었다. 자유민은 인두세, 경작지 규모, 소유한 노예 수, 가축 수에 따라 세금을 납부해야 했다.
경제와 무역
로앙고 왕국은 구리 생산과 직물 제조로 유명했다. 17세기 초반에는 유럽 시장에 구리를 수출하였고, 직물은 내륙 지역과 루안다의 포르투갈인들에게 수출되었다. 17세기 후반부터는 노예 무역에도 참여하였으며, 빌리(Vili) 상인들은 내륙 깊숙이 진출하여 테케 왕국(Teke Kingdom) 및 콩고 강 유역까지 무역망을 확장하였다. 유럽 상인들은 로앙고에 영구적인 교역소를 설립하지 못했고, 마푸크(mafouk)라는 현지 관리들이 왕을 대신하여 무역을 관장하였다.
종교
로앙고 사람들은 최고신 '잠비안 퐁게(Sambian Ponge, 현대 콩고어: Nzambi a Mpungu)'를 믿었으나, 일상적인 숭배는 다양한 은키시(nkisi)라는 신격(神格)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은키시는 특정 지역이나 가정을 수호하는 역할을 했으며, 응앙가 모키시에(Enganga Mokisie, 현대 콩고어: e nganga nkisi)라는 사제들이 이를 관장했다. 16세기부터 기독교 선교가 여러 차례 시도되었으나, 콩고 왕국과 달리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기독교 교회는 정착되지 않았다. 또한 17세기경부터 로앙고 해안에는 흑인 유대인 공동체가 존재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쇠퇴와 멸망
1787년 부아투 왕 사후 장기간의 공위기간을 거치며 왕국의 중앙 통치력은 약화되었다. 19세기 유럽 열강의 아프리카 식민지화 과정에서 로앙고 왕국은 프랑스의 식민지 확장에 직면하였고, 1883년경 프랑스 콩고(French Congo)에 편입되면서 멸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