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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2세 (프랑스)

로베르 2세(Robert II, 972년 3월 27일 ~ 1031년 7월 20일)는 프랑크 왕국의 국왕으로, 별명은 경건왕(le Pieux) 또는 현명왕(le Sage)이다. 카페 왕조의 창시자 위그 카페와 아키텐 공작 기욤 3세의 딸 아델라이드 사이에서 태어난 외아들로, 오를레앙에서 출생했다.

로베르 2세는 987년 12월 25일 오를레앙의 생트크루아 대성당에서 아버지 위그 카페의 생전에 공동 국왕으로 즉위했다. 이는 카페 왕조가 왕위 세습을 공고히 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는 랭스의 주교 아달베론의 후원 아래 게르베르 다우리야크(훗날 교황 실베스테르 2세)에게서 교육을 받았으며, 당시 세속 귀족으로서는 드물게 교양 있는 인물로 성장했다. 특히 음악과 종교적 소양에 뛰어났던 것으로 기록된다.

996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단독 국왕이 된 이후 약 35년간 재위하며, 당시 기준으로 매우 긴 통치 기간을 누렸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는 부르고뉴 공국의 획득이다. 1002년 삼촌인 부르고뉴 공 앙리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로베르 2세는 자신의 혈통상 권리를 주장하며 부르고뉴를 차지하기 위한 군사적·외교적 노력을 기울였고, 1005년경 오토-기욤과의 협정을 통해 부르고뉴 공국을 왕실 영토에 편입시켰다.

그러나 그의 사생활은 종교적 경건함과 대조를 이루는 복잡한 결혼 이력을 남겼다. 첫 번째 아내인 이탈리아 왕녀 로잘라와는 약 3~4년 만에 혼인 무효를 얻었다. 이후 996년 두 번째로 부르고뉴의 베르타와 결혼했으나, 두 사람은 가까운 친족 관계였고 로베르 2세가 베르타의 아들의 대부였기 때문에 교황 그레고리오 5세에 의해 파문 위기에 처했으며, 결국 1001년 혼인 무효가 선언되었다. 세 번째 아내인 아를의 콩스탕스와의 사이에서는 훗날 앙리 1세가 되는 아들 등 여러 자녀를 두었다. 콩스탕스는 정치적으로 매우 적극적인 왕비로, 왕정 내부에서 여러 차례 권력 다툼에 관여했다.

로베르 2세는 극히 신앙심 깊은 국왕으로 알려져 있으며, 궁전에 예배소를 두고 매일 기도 생활을 했다. 그는 이단자들을 엄격히 처벌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1022년 오를레앙에서 발생한 이단 사건이다. 이때 오를레앙 대성당의 성직자들을 포함한 이단으로 고발된 이들이 화형에 처해졌다. 또한 유대인에 대한 박해를 주도한 기록도 존재한다. 한편으로는 나병 환자를 직접 돌보는 등의 자비로운 행적이 그의 전기 작가 엘고 드 플뢰리(Helgaud de Fleury)의 저술 《경건왕 로베르의 생애》를 통해 강조되었으며, 로베르 2세는 프랑스 왕으로서 최초로 치유 기적(thaumaturgy) 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군주로 기록되었다.

그의 재위 후반기에는 왕권의 상대적 약화가 드러났다. 아내 콩스탕스와 두 아들(앙리와 로베르)의 반란이 1025년에서 1031년 사이에 발생했으며, 특히 아들 위그가 1017년 공동 왕으로 즉위했으나 1025년 사망한 뒤 후계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이어졌다. 결국 1027년 둘째 아들 앙리가 공동 왕으로 즉위했다.

로베르 2세는 1031년 7월 20일 믈룅의 거처에서 열병으로 사망했으며, 생드니 대성당에 아버지 위그 카페와 함께 안장되었다. 그의 치유 기적 능력은 후대 프랑스 왕들의 왕권 강화 이념에 영향을 주었고, 그의 치세는 카페 왕조 초기 왕권이 공고해지는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 시기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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