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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쉬망

로베르 쉬망(Robert Schuman, 1886년 6월 29일 ~ 1963년 9월 3일)은 룩셈부르크 태생의 프랑스 정치가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 통합 운동의 핵심 인물로 평가받는다. 본명은 장바티스트 니콜라 로베르 슈만(Jean-Baptiste Nicolas Robert Schuman)이다. 그는 유럽 연합(EU)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출생과 배경

로베르 쉬망은 룩셈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장피에르 슈만은 프랑스 로렌(Lorraine) 지역 출신으로, 1870년 알자스-로렌 지역이 독일 제국에 편입된 후 룩셈부르크로 이주했다. 그의 어머니 외제니 두렌은 룩셈부르크의 베템보르그 출신이다. 쉬망은 룩셈부르크에서 태어났지만 혈통주의(jus sanguinis) 원칙에 따라 독일 국적을 취득하게 되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알자스-로렌 지역이 프랑스로 반환되면서 1919년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그의 모어는 사실상 룩셈부르크어였으며, 학교에서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배웠다. 중등 교육은 룩셈부르크의 아테네 데 룩셈부르크에서 받았고, 이후 독일의 여러 대학에서 신학, 철학, 법학을 공부하여 법학 학위를 취득했다.

정치 경력

쉬망은 변호사로서 활동하기 시작했으나, 건강 문제로 징집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시민 사회에서 대체복무를 수행했다. 전후 알자스-로렌이 프랑스로 반환되면서 프랑스 정치에 진출했고, 1919년 하원 의원이 되었다. 이후 1958년까지 국회에서 활동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하자 그는 대독 저항 운동에 참가했으며, 기독교 민주주의 정당인 인민 공화파(MRP, Popular Republican Movement)에 속했다. 전후에는 프랑스 재정 장관과 국무총리를 두 차례 역임했으며, 프랑스 공산당과 드골주의에 반대하는 제3세력으로서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이후 프랑스 외무부 장관을 지냈다.

슈만 선언과 유럽 통합

쉬망은 1950년 5월 9일 프랑스 외무부 장관으로서 역사적인 선언을 발표했다. 이른바 '슈만 선언'(Schuman Declaration) 또는 '슈만 플랜'으로 불리는 이 제안은 프랑스와 서독의 석탄 및 철강 생산을 공동 관리 기구 아래에 두자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는 두 나라 사이의 전쟁을 "물질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 선언은 1951년 파리 조약을 거쳐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의 창설로 이어졌으며, 이는 오늘날 유럽 연합(EU)의 직접적인 모태가 되었다. 유럽 연합은 매년 5월 9일을 슈만 선언을 기념하는 '유럽의 날'(Europe Day)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평가

쉬망은 프랑스 총리를 두 차례, 외무부 장관을 역임한 정치가이자, 유럽 통합의 아버지들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그는 이탈리아의 알치데 데 가스페리, 독일의 콘라트 아데나워와 함께 유럽 통합에 가장 중요한 기여를 한 인물로 자주 언급된다. 유럽 연합의 공식 창립자 명단에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1963년 9월 3일 프랑스 모젤 지역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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