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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프랭크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1924년 11월 9일 ~ 2019년 9월 9일)는 스위스 태생의 미국 사진가이자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사진 예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 중 하나로 평가된다.

생애와 초기 활동

로버트 프랭크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유대인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신으로 나치 치하에서 독일 국적을 잃어 무국적자가 되었으며, 가족은 스위스 시민권을 취득해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가족은 스위스에 안전하게 머물 수 있었으나, 나치즘의 위협은 프랭크에게 억압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그는 상업 지향적인 가정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사진에 몰두하기 시작했으며, 여러 사진가와 그래픽 디자이너 밑에서 훈련을 받았다. 1946년 첫 수제 사진집 《40 Fotos》를 제작했다.

1947년 미국으로 이주한 프랭크는 뉴욕에서 패션 잡지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의 패션 사진가로 취직했다. 이후 남미와 유럽을 여행하며 사진 활동을 이어갔고, 1950년 미국으로 돌아와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전시에 참여했으며 동료 예술가 메리 프랭크와 결혼했다. 1953년부터는 《맥콜스》, 《보그》, 《포춘》 등 잡지에서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당시 사울 라이터, 다이앤 아버스 등과 교류하며 1940~1950년대 '뉴욕 사진 학교'(New York School of photographers)의 형성에 기여했다.

대표작 《미국인들》(The Americans)

프랭크는 1955년 존 사이먼 구겐하임 재단의 펠로십을 수여받아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사회 각 계층의 모습을 촬영했다. 약 2년에 걸쳐 28,000장의 사진을 촬영했으며, 그중 83장을 선별하여 사진집으로 엮었다. 이 작업은 스위스 사진가 야코프 투게너의 1943년 작품 《파브리크》, 빌 브란트의 《영국의 집》(1936), 워커 에반스의 《미국 사진》(1938)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8년 《레 아메리캥》(Les Américains)이라는 제목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출간되었으며, 1959년 미국에서 잭 케루악의 서문을 붙여 《미국인들》(The Americans)로 출간되었다. 초기에는 '의미 없는 블러, 그레인, 어두운 노출, 비스듬한 구도, 전반적인 조잡함'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이후 20세기 사진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집 중 하나로 재평가되었다. 《가디언》의 비평가 션 오하건은 2014년 이 작품이 "사진의 본질과 표현 가능성을 바꾸었다"고 평가했다.

이 작품의 사진들은 1950년대 미국의 낙관적 문화 이면에 존재하는 인종·계층 간의 갈등과 불평등을 포착한 것으로 평가된다. 당시 주류 사진저널리즘의 관행에서 벗어난 특이한 초점, 낮은 조명, 비관습적인 크롭 방식이 특징이다. 또한 프랭크가 여행 중 남부에서 겪은 반유대주의적 대우가 그의 미국에 대한 어두운 시각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영화 활동

1959년 미국판 《미국인들》이 출간될 무렵, 프랭크는 사진에서 영화 제작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1959년 잭 케루악이 각본과 내레이션을 맡고 앨런 긴즈버그 등 비트 세대 인물들이 출연한 영화 《풀 마이 데이지》(Pull My Daisy)를 알프레드 레슬리와 공동 연출했다. 이 영화는 즉흥성과 자발성을 중시하는 비트 운동의 미학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1972년에는 롤링 스톤스의 미국 투어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콕서커 블루스》(Cocksucker Blues)를 제작했다. 이 영화는 과도한 약물 사용과 성적 장면을 포함하여 논란을 일으켰으며, 밴드 측과의 법적 분쟁 끝에 연간 5회 이하, 프랭크 입회 하에서만 상영이 허용되는 제한을 받았다. 프랭크의 사진은 롤링 스톤스의 앨범 《Exile on Main St.》 표지에도 사용되었다.

후기 활동과 생애 말년

프랭크는 1970년대에 사진 작업으로 복귀하여 1972년 시각적 자서전으로 평가되는 《나의 손의 선들》(The Lines of My Hand)을 출간했다. 이후에는 전통적인 '스트레이트' 사진에서 벗어나 텍스트와 다중 프레임을 결합하고 네거티브에 직접 스크래치를 내는 등 구성적이고 변형된 이미지 작업을 전개했다.

개인적으로는 1974년 딸 안드레아가 과테말라에서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고, 아들 파블로는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아 1994년 사망했다. 프랭크는 딸을 기리기 위해 1995년 안드레아 프랭크 재단을 설립하여 예술가 지원 사업을 운영했다. 1971년부터는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케이프브레턴 섬의 마부 지역에 거주하며 뉴욕과 오가며 활동했다. 2019년 9월 9일 노바스코샤 자택에서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주요 수상 및 평가

프랭크는 1955년 구겐하임 펠로십을 수여받았고, 1996년 하셀블라드 국제 사진상을 수상했다. 2002년에는 맥도웰 메달을 받았으며, 2015년 노바스코샤 예술디자인대학에서 명예 미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작품은 다이앤 아버스, 리처드 아베돈 등 후대 사진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며, 미국 사진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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