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토드 링컨(Robert Todd Lincoln, 1843년 8월 1일 ~ 1926년 7월 26일)은 미국의 공화당 소속 정치인이자 변호사이다.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과 메리 토드 링컨의 장남으로, 네 아들 중 성인이 된 유일한 아들이었다.
생애 초기와 교육
로버트 토드 링컨은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외할아버지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동생 에드워드, 윌리엄, 토머스는 모두 어린 나이에 병으로 사망하여, 로버트만이 성인이 될 때까지 생존하였다. 그는 뉴햄프셔주의 학교를 거쳐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하였다.
군사 복무
1865년 남북 전쟁 말기에 로버트 링컨은 율리시스 S. 그랜트 장군의 군대에서 대위로 잠시 복무하였다. 그의 입대는 부친의 정적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하였는데, 일부에서는 그의 모친이 그를 전투에 내보내지 않으려 하였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부친의 암살
1865년 4월 15일,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존 윌크스 부스에 의해 암살당하였다. 로버트는 부친이 총격을 받은 후 사망할 때 침대 곁에 있었다. 이후 그는 모친과 함께 시카고로 이주하여 법률 공부를 계속하였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정치 및 공직 경력
로버트 토드 링컨은 시카고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며 철도 및 기업 부문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1881년 제임스 A. 가필드 대통령에 의해 미국 제35대 전쟁장관으로 임명되어 1885년까지 재임하였다. 재임 기간 동안 그는 인디언 토지 보호 입법을 지지하고, 기상국과 육군의 분리를 제안하는 등 여러 정책을 추진하였다.
1889년에는 벤저민 해리슨 대통령에 의해 영국 주재 공사로 임명되어 1893년까지 재임하였다. 이후 그는 시카고의 풀먼 팰러스 자동차 회사에서 일반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1901년 사장이 되었고, 1911년 사임한 뒤에도 이사회 의장으로 1922년까지 활동하였다.
개인 생활
1868년 로버트 토드 링컨은 메리 할란과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었다. 그의 외아들 에이브러햄 "잭" 링컨은 16세의 나이로 수술 후 패혈증으로 사망하였다.
1875년, 로버트는 모친 메리 토드 링컨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조치를 취하였다. 이후 모친은 자신의 정신 이상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였고, 시카고 법원은 과거의 판결을 뒤집어 그녀의 정신 상태를 정상으로 선언하였다. 이 사건 이후 모자 관계는 긴장 상태에 있었다.
사망
로버트 토드 링컨은 1926년 7월 26일 버몬트주 맨체스터의 여름 휴양지에서 8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의사는 사인이 동맥경화증으로 인한 뇌출혈이라고 진단하였다. 그는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으며, 그의 부인은 남편이 "그의 위대한 부친과는 별개로 자신의 역사를 만든 인물"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그곳을 매장지로 선택하였다고 전해진다.
기타
로버트 토드 링컨은 자신의 생애 동안 세 차례의 대통령 암살 사건과 관련된 장소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친 에이브러햄 링컨의 암살 당시 침대 곁에 있었고, 제임스 A. 가필드 대통령이 총격을 당했을 때 워싱턴 역에 있었으며,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이 총격을 당했을 때 버펄로 팬아메리카 박람회에 있었다. 그는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자신이 불운을 가져온다고 믿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