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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버드

로버트 칼라일 버드(Robert Carlyle Byrd, 1917년 11월 20일 ~ 2010년 6월 28일)는 미국의 정치인으로,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웨스트버지니아주)을 역임했다. 본명은 코넬리어스 캘빈 세일 주니어(Cornelius Calvin Sale Jr.)이다.

생애 초기

1917년 노스캐롤라이나주 노스윌크스보로에서 태어났다. 생후 11개월 때 어머니가 1918년 인플루엔자 범유행으로 사망하자, 아버지는 그를 웨스트버지니아주의 탄광촌에서 살던 고모 부부에게 입양보냈다. 이때 이름이 로버트 버드로 변경되었다. 가난한 가정 형편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정육점 직원, 주유소 직원, 용접공, 식료품점 직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1937년 고등학교 시절부터 알던 어마 제임스와 결혼하여 슬하에 두 딸을 두었다.

정치 경력

1940년대 초, 버드는 쿠 클럭스 클랜(KKK)의 웨스트버지니아주 지부를 창설하고 회원을 모집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는 그가 이후 생애에서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라고 반복해서 밝힌 행적이다. 1946년 KKK의 지원을 바탕으로 웨스트버지니아주 하원의원에 당선되었고, 1950년 주 상원의원을 거쳐 1952년 연방 하원의원(웨스트버지니아 제6선거구)에 당선되었다. 1958년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승리하여 1959년 1월 3일부터 2010년 사망할 때까지 51년간 상원의원으로 재임했다.

공직 생활 중에도 학업을 병행하여 1963년 아메리칸 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 박사(J.D.) 학위를 받았다. 1994년에는 마샬 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 학위를 우등으로 취득했다.

상원에서의 역할

버드는 상원에서 주요 지도직을 역임했다. 1971년부터 1977년까지 상원 다수당 원내총무, 1977년부터 1989년까지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다수당 원내대표 1977~1981, 1987~1989, 소수당 원내대표 1981~1987)를 지냈다. 1989년부터 1995년, 2001년, 2001년부터 2003년, 2007년부터 사망 시까지 네 차례에 걸쳐 상원 임시의장을 역임했으며, 이 직위는 대통령 승계 서열 3위에 해당한다. 또한 상원 세출위원회 위원장을 여러 차례 지내며 웨스트버지니아주에 대규모 연방 예산을 유치하는 데 주력했다.

주요 입장과 변화

초기에는 인종 차별 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1964년 민권법에 반대하여 14시간 동안 필리버스터(의사진행 방해)를 벌였으며, 1965년 투표권법, 서굿 마셜의 대법관 임명에도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부터 인종 차별주의를 공개적으로 반성하기 시작했으며, 1983년 마틴 루터 킹의 날 제정 법안에는 찬성했다. 2008년 대선에서는 버락 오바마를 공개 지지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파병 동의안에 반대표를 던지며 전쟁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제기했다. 베트남 전쟁 초기에는 강경한 입장을 취했으나,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는 반전 입장을 분명히 했다.

기록

2006년 6월 12일 스트롬 서먼드를 제치고 미국 역사상 최장수 상원의원 기록을 세웠다. 2009년 11월 18일에는 하원과 상원 재임 기간을 합산하여 미국 의회 역사상 최장수 의원 기록(56년 320일)을 달성했다. 상원 재임 기간 동안 총 18,000회 이상의 표결에 참여했다.

사망

건강이 악화되어 여러 차례 입원한 끝에 2010년 6월 28일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병원에서 9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장례식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조 바이든 부통령,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이 참석했으며, 웨스트버지니아주의 상징적인 노래인 'Take Me Home, Country Roads'가 연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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