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히폴리투스(Hippolytus of Rome, 170년대 ~ 235년 8월 13일)는 2세기 후반에서 3세기 초반에 활동한 초기 기독교 신학자이자 사제이다. 그는 당대의 가장 중요한 기독교 신학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지만, 그의 생애와 정체성, 저작에 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그의 출생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리스 철학과 신화, 그리스 신비 의식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헬레니즘적 교육 배경으로 미루어 소아시아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추정된다. 리옹의 주교였던 성 이레네우스(Irenaeus)의 제자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알려져 있다.
히폴리투스는 로마 교회에서 활동하던 중, 당시 교황들과 신학적·교회 정치적 갈등을 겪었다. 특히 교황 제피리노(Zephyrinus)와 그의 부제였던 갈리스토(Callistus)가 이단적인 양태론(Modalism)을 지지한다고 비판하였으며, 갈리스토가 교황으로 즉위하자 로마 교회를 떠나 추종자들과 별도의 교파를 형성하였다. 이로 인해 그는 역사상 최초의 대립 교황(antipope)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후 순교하기 전에 교회와 화해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주요 신학적 입장은 로고스(Logos) 교리를 옹호한 것으로, 이는 이후 삼위일체론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그는 윤리적으로 엄격한 참회 체제를 주장하며, 이교도 개종자들을 더 폭넓게 수용하려는 당시 교황들의 관대한 방침에 반대하였다.
히폴리투스의 대표적인 저작으로는 《만인의 이단 논박》(Refutatio Omnium Haeresium)이 있으며, 이는 초기 기독교 이단들을 체계적으로 비판한 저술이다. 또한 그는 성서 주석가로서도 활동하였으며, 그의 문헌은 후대 교부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그는 235년 로마 황제 막시미누스 트락스(Maximinus Thrax) 치하의 박해 때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로마 가톨릭교회와 정교회에서 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축일은 8월 13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