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랑 그바그보(프랑스어: Laurent Gbagbo, 1945년 5월 31일~)는 코트디부아르의 정치인으로, 2000년부터 2011년까지 동국의 제4대 대통령을 역임한 인물이다. 본명은 쿠두 로랑 그바그보(Koudou Laurent Gbagbo)이다. 코트디부아르 역사상 최초의 중도좌파 성향 대통령으로 평가된다.
그바그보는 서아프리카의 가그노아 지역에서 베테족 출신의 로마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역사학자로 활동한 그는 아비장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가르쳤으며, 1979년 파리 제7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아비장 대학교의 역사·예술·아프리카 고고학 연구소장을 지냈다.
정치 경력 초기에 그는 장기 집권 대통령이었던 펠릭스 우푸에부아니의 정권에 반대하는 야권 인사로 활동했다. 1970년대 초반과 1990년대 초반 각각 투옥 경험이 있으며, 1980년대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1982년 아이보리 인민전선(FPI)을 창당했고, 1990년 다당제 도입 이후 첫 대통령 선거에서 우푸에부아니에게 맞섰으나 패배했다.
1999년 군사 쿠데타로 로베르 게이가 정권을 장악한 이후, 2000년 10월 대통령 선거에서 그바그보는 게이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2002년에는 반군이 북부 지역을 장악하면서 제1차 코트디부아르 내전이 발발했고, 2007년 평화 협정이 체결되기까지 국가는 남북으로 분열된 상태였다.
2010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바그보는 알라산 우아타라에게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를 불복하고 퇴임을 거부하면서 2010년 12월부터 두 명의 대통령이 공존하는 정치적 위기가 발생했다. 이는 약 3,000명의 사망자를 낸 선거 후 폭력 사태로 이어졌다. 결국 2011년 4월, 우아타라 지지 세력과 유엔·프랑스 군의 지원에 힘입은 반군에 의해 그바그보는 아비장의 대통령궁 지하 벙커에서 체포되었다.
그바그보는 2011년 11월 네덜란드 헤이그로 송환되어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는 ICC가 전직 국가 원수를 구금한 최초의 사례였다. 그러나 2019년 1월, ICC 재판부는 증거 부족을 이유로 그바그보와 공동 피고인 샤를 블레 구데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의 항소 끝에 2021년 3월 ICC는 무죄 판결을 최종 확정했다.
무죄 판결 확정 이후 그바그보는 2021년 6월 코트디부아르로 귀국했으며, 같은 해 10월 신당 '아프리카인민당-코트디부아르(PPA-CI)'를 창당하여 정치 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2025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 했으나 후보 명단에서 제외되었고, 이에 대해 아프리카인권재판소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기각되었다.
그바그보의 정치적 생애는 코트디부아르의 민주화 과정과 내전, 그리고 선거 결과를 둘러싼 국제적 개입 등 서아프리카 현대사의 복잡한 흐름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의 재임 기간과 퇴진 과정에 대해서는 국내외적으로 상반된 평가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