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디 전투(영어: Battle of Lodi)는 1796년 5월 10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이탈리아 밀라노 남동쪽 약 31km 지점에 위치한 아다강(Adda River)의 로디 다리(Lodi Bridge)에서 장 피에르 볼리외(Jean-Pierre Beaulieu)가 지휘하는 오스트리아군 후위 부대와 벌인 전투이다. 이 전투는 프랑스 혁명 전쟁 중 나폴레옹의 제1차 이탈리아 원정 당시 세 번째 전투에 해당한다.
배경
1796년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에 임명된 나폴레옹은 알프스산맥과 아펜니노산맥 경계를 넘어 피에몬테(Piedmont) 지역으로 진출하였다. 전격적인 공세를 통해 오스트리아군과 사르데냐군을 분리시킨 뒤, 4월에 사르데냐가 휴전협정을 체결하자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군을 상대로 본격적인 작전을 개시하였다. 오스트리아군 사령관 볼리외는 정면 대결을 회피하며 후퇴하였고, 나폴레옹은 롬바르디아의 수도 밀라노를 방어하는 오스트리아군의 좌익 방면으로 우회 기동을 감행하였다.
전투 경과
포강(Po River)을 사이에 두고 행군하던 나폴레옹은 피아첸차(Piacenza)에서 포강을 도하한 뒤, 5월 10일 아다강 인근의 도시 로디(Lodi)에서 카를 필립 폰 세보텐도르프(Karl Philipp von Sebottendorf)가 이끄는 약 10,000명의 오스트리아군 후위 부대와 조우하였다.
오스트리아군은 아다강 건너편에 포진한 상태였으며, 길이 약 200m에 달하는 목제 로디 다리만이 강을 건널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오스트리아군은 다리를 완전히 파괴하지 못한 상태에서 프랑스군과 대치하게 되었다.
나폴레옹은 30문의 대포로 강 건너편 오스트리아군의 포병 진지와 방어 시설을 향해 포격을 가하는 동시에, 다리 상류와 하류의 여울목을 통해 아다강을 건널 우회 부대를 파견하였다. 이후 안드레 마세나(André Masséna) 장군 휘하의 보병 종대에게 다리를 건너 정면 돌격을 명령하였으나, 오스트리아군의 집중 사격으로 약 4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며 첫 번째 돌격은 실패하였다.
이에 나폴레옹은 직접 군기를 휘날리며 선두에 서서 돌격을 지휘하였고, 병사들은 이에 고무되어 재차 돌격을 감행하였다. 때마침 상류와 여울목을 건넌 프랑스 우회 부대가 오스트리아군의 측면과 포병 진지를 공격하자, 오스트리아군은 혼란에 빠져 퇴각하였다.
피해 규모
오스트리아군은 사상자 2,036명(장교 21명, 병사 2,015명)과 대포 12문, 박격포 2문을 상실하였다. 프랑스군의 피해 규모는 정확히 기록되지 않았으나 약 5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결과 및 의의
전투 자체의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이 전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나폴레옹이 직접 선두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며 보여준 용감한 행동은 병사들에게 깊은 신뢰와 감동을 주었고, 이로 인해 병사들은 그에게 '꼬마하사관'(프랑스어: Le petit caporal)이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이는 나폴레옹이 병사들 사이에서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투 5일 후인 1796년 5월 15일, 프랑스군은 북이탈리아의 중심 도시인 밀라노를 점령하였다. 이후 오스트리아군은 8월에 독일 전선에서 프랑스군을 격퇴한 뒤 주력 부대를 북이탈리아로 재배치하여 나폴레옹을 위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