렙티스 마그나(Leptis Magna)는 리비아 트리폴리타니아 지방의 고대 도시 유적으로, 지중해 연안의 와디 렙다(Wadi Lebda) 하구에 위치한 카르타고 제국 및 로마령 리비아의 주요 도시였다. 현재의 행정구역상 위치는 리비아 무르쿠브주의 훔스(알훔스) 일대이며, 트리폴리에서 동쪽으로 약 130킬로미터 떨어진 해안에 자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 도시는 기원전 7세기경 페니키아(포에니)인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카르타고 제국의 영역에 포함되었고,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가 패배한 이후 로마의 지배 아래로 편입되었다. 기원전 111년경 이 도시는 로마 원로원과 우호·동맹 관계를 맺었으며, 기원후 46년에는 로마의 아프리카 속주에 편입되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는 자유 도시(civitas libera et immunis)의 지위를 유지하다가 티베리우스 황제 시기에 정식으로 로마 속주의 일부가 되었다.
이 도시가 가장 크게 발전한 시기는 로마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재위 193~211년) 치세였다. 세베루스는 렙티스 마그나 출신으로, 자신의 고향 도시를 크게 후원하여 대규모 포룸(광장), 대형 바실리카, 부두 시설 등을 건설하고 도시를 확장·정비하였다. 이 시기 렙티스 마그나는 인구 약 10만 명에 달하는 메디테라니안 지역의 주요 항구 도시로 번영했다. 당시 이 도시는 올리브유 생산과 사하라를 가로지르는 무역(상아, 야생동물, 금분, 보석, 흑단, 타조 깃털 등)을 통해 큰 부를 축적하였다.
그러나 3세기 로마 제국의 위기와 함께 무역이 급격히 쇠퇴하면서 도시의 중요성도 약화되었다. 365년에 발생한 지진해일(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었고, 439년에는 반달 왕국의 지배 아래 들어가면서 성벽이 철거되기도 하였다. 이후 베르베르족의 약탈과 침입이 잦아졌고, 533~534년 동로마(비잔틴) 제국의 벨리사리우스 장군이 이 도시를 다시 수복하면서 동로마 제국의 속주 수도가 되었으나 예전의 번영을 회복하지는 못하였다. 7세기 중반(약 647년) 이슬람 세력의 정복 당시 도시는 대부분 버려진 상태였으며, 이후 사구(모래언덕) 아래에 묻혀 오랜 기간 보존되었다.
20세기 초 이탈리아가 리비아를 점령한 시기에 이탈리아 고고학자들에 의해 도시 유적이 대대적으로 발굴되었다. 현재 렙티스 마그나 유적은 로마 시대 건축의 대표적인 예로서, 지중해 지역에서 가장 잘 보존된 로마 유적 중 하나로 평가된다. 주요 유적으로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 세베루스 바실리카, 대형 포룸, 원형극장, 시장, 목욕탕 시설 등이 있다.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2011년 리비아 내전 당시에는 유적지 인근에서 전쟁 관련 동향이 보고된 바 있으며, 기후 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유적이 침수·침식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국제적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 단어는 실재하는 고대 도시명으로, 고고학·역사학 분야에서 널리 알려진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