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다비도비치 트로츠키(러시아어: Лев Давидович Троцкий, 1879년 11월 7일 ~ 1940년 8월 21일)는 러시아의 혁명가, 정치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이다. 영어식 이름을 따서 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라고도 불린다.
생애와 혁명 활동
트로츠키는 당시 러시아 제국령이었던 우크라이나의 부유한 유대인 농가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레프 다비도비치 브론시테인이며, "트로츠키"는 필명으로, 오데사 감옥에서 만난 간수의 이름을 가명으로 사용한 데서 유래하였다. 1898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에 입당하며 정치 활동을 시작했고, 혁명 활동 혐의로 시베리아에 유형당했다가 1902년 탈출하여 런던에서 레닌을 만났다.
1903년 당 제2차 대회에서 레닌의 볼셰비키 노선에 반대하여 멘셰비키에 가담했으나, 이후 멘셰비키와도 결별하고 어느 분파에도 속하지 않는 독자적 입장을 취했다. 1905년 혁명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 의장으로 활동하다 다시 체포되었고, 이후 유럽과 미국을 전전하였다.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 이후 귀국하여 그해 7월 볼셰비키에 공식 입당했다.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의장으로서 10월 혁명을 주도했고, 레닌의 신정부에서 외무인민위원을 역임했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체결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의 참전을 종결지었으며, 이후 러시아 내전 기간에는 붉은 군대(적군)를 창설하고 군무해사인민위원으로서 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스탈린과의 대립과 추방
1924년 레닌 사후 트로츠키는 권력을 장악한 이오시프 스탈린의 가장 유력한 경쟁자가 되었다. 트로츠키는 세계 공산주의 혁명의 확산을 주장하는 영구혁명론(연속혁명론)을 내세웠으며, 이는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론과 정면으로 대립했다. 정치적 열세에 몰린 트로츠키는 1926년 정치국에서, 1927년 당에서 제명되었고, 1929년 소련에서 국외로 추방되었다.
망명 이후 튀르키예, 프랑스, 노르웨이, 멕시코 등을 전전하며 반스탈린주의 투쟁을 이어갔다. 이 시기 《나의 생애》(1930), 《러시아 혁명사》(1931), 《배반당한 혁명》(1936) 등의 저작을 발표했다. 특히 《배반당한 혁명》에서 그는 스탈린 치하의 소련을 "타락한 노동자국가"로 규정하며 비판했다. 1938년에는 소련 주도의 코민테른에 대한 대안으로 제4인터내셔널을 설립하였다.
사망과 평가
트로츠키는 1940년 8월 21일 멕시코시티 코요아칸의 자택에서 스탈린이 사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암살자 라몬 메르카데르에 의해 등산용 피켈로 살해당했다. 스탈린 치하에서 기록말살형을 당한 그는 이후에도 정치적으로 복권되지 못했다.
서구권에서는 트로츠키가 스탈린의 전체주의에 맞서 보다 민주적이고 국제주의적인 형태의 사회주의를 지지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가 러시아 내전과 적색 테러 과정에서 취한 가혹한 조치들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며, 학계에서는 그의 혁명적 지도력과 소련 건국 과정에서의 역할을 전반적으로 높게 평가하면서도 그 수단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