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테만 전투(레이트灣 戰鬪, 영어: Battle of Leyte Gulf)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태평양 전쟁의 일부로서, 1944년 10월 23일부터 10월 26일까지 필리핀 중부의 레이테만과 그 주변 해역에서 미합중국 해군 및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과 일본 제국 해군 사이에 벌어진 대규모 해전이다. 공식적으로는 제2차 필리핀 해전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 가장 큰 해전이자 역사상 가장 큰 해전 중 하나로 평가된다.
배경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일본군은 중앙 태평양과 남태평양 지역에서 점령지를 하나씩 상실하였다. 1944년 6월 마리아나 제도의 대부분이 미군에 의해 점령되고 필리핀 해전에서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 기반 항공전력이 큰 타격을 입으면서, 일본의 근접 방어선은 붕괴되었다. 미군은 장거리 폭격기를 이용해 일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비행 기지를 확보하게 되었다.
미군 지휘부 내에서는 차기 공격 목표를 두고 이견이 있었다. 어니스트 킹 제독은 타이완(당시 포르모자) 공격을 선호했으나,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필리핀 탈환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맥아더의 주장은 전략적 중요성과 함께 1942년 필리핀 철수 당시 남긴 "나는 돌아오겠다(I shall return)"라는 자신의 공언에 대한 책임감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종적으로 필리핀 레이테섬 공격이 결정되었다.
일본 제국 해군은 연합함대 사령관 도요다 소에무 제독의 지휘 아래 '쇼1호 작전(捷1号作戦)'을 준비하였다. 이 작전은 항공모함을 거의 탑재하지 않은 '북방군'을 미끼로 내세워 미군 주력 함대를 레이테만 밖으로 유인한 뒤, '중부군'과 '남방군'이 레이테만 서쪽에서 상륙부대를 공격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정교한 다방향 작전이었다.
전투 경과
레이테만 전투는 크게 네 개의 연속된 전투로 구성되어 있다.
1. 시부얀 해전
구리타 다케오 제독이 지휘하는 일본 중부군은 5척의 전함(야마토, 무사시, 나가토, 곤고, 하루나)을 포함한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브루나이에서 출항하였다. 팔라완 통로에서 미 해군 잠수함 다터(USS Darter)와 데이스(USS Dace)의 기습 공격을 받아 중순양함 아타고와 마야를 잃었다. 이후 10월 24일, 시부얀해에서 미 3함대의 항공 공격을 받아 초대형 전함 무사시가 격침되었다. 그러나 구리타 함대의 나머지 전력은 대부분 보존되었고, 밤중에 산베르나르디노 해협을 통과하였다.
2. 수리가오 해협 전투
니시무라 쇼지 제독이 지휘하는 일본 남방군은 전함 야마시로와 후소를 포함한 함대를 이끌고 수리가오 해협을 통과하려 하였다. 그러나 미 7함대가 사전에 매복하고 있었다. 10월 25일 새벽, 미군은 전함 6척, 순양함 8척, 구축함 28척, 어뢰정 39척으로 구성된 압도적인 전력으로 일본 함대를 포위 공격하였다. 일본 전함 두 척을 포함한 대부분의 함정이 격침되었고, 구축함 시구레 한 척만이 생존하여 퇴각하였다. 이 전투는 역사상 마지막 '전함 대 전함' 전투이자, 역사상 마지막으로 T자 작전(정자전법, Crossing the T)이 사용된 전투로 기록되어 있다.
3. 사마르 해전
윌리엄 홀시 제독이 지휘하는 미 3함대가 북방군 추격을 위해 산베르나르디노 해협을 비운 사이, 구리타의 중부군이 해협을 통과하여 사마르섬 연안의 미 호위항공모함 전단 'Taffy 3'를 기습 공격하였다. 수적으로 압도적으로 열세였던 미 호위항공모함과 구축함들은 전함 야마토를 포함한 일본 함대에 대항하여 격렬한 저항을 펼쳤다. 미군은 호위항공모함 2척(겜비어 베이, 세인트로)과 구축함 2척, 호위구축함 1척을 잃었으나, 구리타 제독이 교전 상대를 미 해군 주력으로 오판하고 퇴각을 결정하면서 미 상륙부대는 구해졌다.
4. 엔가뇨곶 해전
홀시 제독이 지휘하는 미 3함대의 주력 부대는 미끼 역할을 하던 오자와 지사부로 제독의 북방군을 공격하였다. 북방군은 항공모함 즈이카쿠를 비롯한 4척의 항공모함을 포함하고 있었으나 탑재 항공기가 극히 부족한 상태였다. 미군은 북방군에 대해 527회의 출격을 기록하며 항공모함 즈이카쿠, 즈이호, 지토세, 치요다를 격침시켰다. 그러나 홀시 제독이 북방군 추격에 전력을 집중하는 동안 산베르나르디노 해협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것이 사마르 해전에서 큰 위기를 초래한 원인이 되었다.
결과
연합군(미국·오스트레일리아)은 경항공모함 1척, 호위항공모함 2척, 구축함 2척, 호위구축함 1척 등 6척의 수상 전투함과 약 2,800명 이하의 사상자를 기록하였다. 반면 일본 제국 해군은 항공모함 1척, 경항공모함 3척, 전함 3척, 중순양함 6척, 경순양함 4척, 구축함 9척 등 총 26척의 수상 전투함을 상실하였다.
레이테만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일본 제국 해군은 사실상 전투력을 상실하였다. 살아남은 대형 함정들은 연료 부족으로 이후 태평양 전쟁 기간 동안 거의 항구에 묶여 있었다. 이 전투는 또한 일본군에 의한 조직적인 가미카제(특별공격대) 공격이 처음으로 수행된 전투이기도 하다. 전투의 결과로 연합군은 필리핀에 대한 해상·공중 우세를 확보하였고, 이는 이후 일본 본토로의 접근 작전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레이테만 전투는 제2차 세계 대전 해전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로 평가되며, 일본 제국 해군의 실질적인 붕괴를 가져온 결정적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