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옹 조제프 마리 이냐스 드그렐(프랑스어: Léon Joseph Marie Ignace Degrelle, 1906년 6월 15일 ~ 1994년 3월 31일)은 벨기에의 정치인이자 나치 독일의 부역자이다.
드그렐은 벨기에 룩셈부르크 주의 부용에서 태어나 가톨릭 계열 가정에서 성장했다. 루뱅 가톨릭 대학교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하던 중 가톨릭 청년 운동에 참여하며 언론 활동을 시작했다. 1930년대 초반, 그는 가톨릭 출판사 '크리스투스 렉스(Christus Rex)'를 인수하여 운영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1935년 11월 극우 가톨릭 교권파시즘 정당인 렉스당(Rexist Party)을 창당했다. 렉스당은 1936년 벨기에 총선에서 11.5%의 득표율과 21석을 획득하며 벨기에 정계에 큰 돌풍을 일으켰으나, 1937년 브뤼셀 보궐선거에서 폴 반 질란트 당시 총리에게 참패한 이후 급속히 쇠퇴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나치 독일이 벨기에를 점령하자, 드그렐은 나치 독일에 대한 협력 노선을 강화했다. 1941년 6월 독일의 소련 침공(바르바로사 작전)이 시작되자, 그는 왈롱 군단(Walloon Legion)을 조직하여 일개 사병으로 자진 입대했으며, 동부 전선에서 전투에 참여했다. 1943년 6월 왈롱 군단은 독일 국방군에서 무장친위대(Waffen-SS)로 이관되어 SS돌격여단 발로니엔(SS-Sturmbrigade Wallonien)이 되었다. 드그렐은 1944년 2월 체르카시 포위전에서의 전과로 히틀러로부터 기사십자 철십자장을 수여받았으며, 이후 SS연대지도자(SS-Standartenführer, SS대령에 해당)까지 진급하여 제28SS의용척탄병사단 발로니엔(28. SS-Freiwilligen-Grenadier-Division Wallonien)의 사단장을 역임했다.
나치 독일의 패망이 임박하자 드그렐은 1945년 5월 독일군 항공기를 타고 스페인으로 탈출했으며, 비행기 추락 사고를 겪었으나 생존했다. 벨기에 정부는 그를 결석 재판으로 사형 선고하고 시민권을 박탈했으나, 프랑코 정권 아래의 스페인은 그의 인도를 거부했다. 드그렐은 스페인 말라가에 은거하며 스페인 시민권을 취득하고 호세 레온 라미레스 레이나(José León Ramírez Reina)라는 가명으로 생활했다.
전후 드그렐은 스페인에서 네오나치 활동을 지속하며 홀로코스트 부정을 주장하는 여러 저서와 인터뷰를 발표했다. 1985년 스페인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가스실 존재를 부인한 발언으로 인해 홀로코스트 생존자 비올레타 프리드만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1991년 스페인 대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드그렐은 1994년 3월 31일 스페인 말라가의 한 병원에서 심정지로 사망했으며, 벨기에 정부는 그의 유해 반입을 금지했다.
드그렐은 전후 유럽 극우 및 네오나치 운동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저작들은 일부 극우 단체에서 여전히 참고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