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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폴도 갈티에리

레오폴도 포르투나토 갈티에리 카스테이(스페인어: Leopoldo Fortunato Galtieri Castelli, 1926년 7월 15일 ~ 2003년 1월 12일)는 아르헨티나의 군인 출신 정치인으로, 1981년 12월부터 1982년 6월까지 아르헨티나의 사실상 대통령(de facto President)을 역임한 군사 독재자이다.

생애 초기 및 군 경력

갈티에리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 카세로스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1943년 국립군사학교에 입학하여 토목공학을 전공하였고, 육군 공병 장교로 군 경력을 시작하였다. 1949년 미국 육군 아메리카 학교(US Army School of the Americas)를 졸업하였고, 1958년에는 고등전쟁대학에서 공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권력 장악

1975년 아르헨티나 육군 공병대 사령관이 되었고, 1976년 3월 이사벨 페론 대통령을 전복시킨 군사 쿠데타를 적극 지지하였다. 이 쿠데타로 성립된 군사 정권(국가재편성과정, National Reorganization Process) 하에서 1977년 소장, 1980년 중장으로 진급하며 육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1981년 12월 로베르토 비올라를 축출하고 대통령에 임명되었으며, 동시에 집권 군사 정권의 수장이 되었다.

통치 기간

집권 후 갈티에리는 제한적인 정치 개혁을 허용했으나, 반대 시위와 민주화 요구가 곧 증가하였다. 경제 정책으로는 보수 경제학자 로베르토 알레만을 재무장관에 임명하여 긴축 재정, 국영 기업 매각, 긴축 통화 정책 등을 추진하였으나, 인플레이션 130%에 달하는 상황에서 실질 GDP는 5% 감소하고 경기 침체는 심화되었다.

대외 정책에서 갈티에리는 냉전 체제 하에서 나토(NATO) 및 미국과 강력한 동맹 관계를 구축하였고, 니카라과의 반공 산디니스타 저항 세력(콘트라)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였다. 또한 더러운 전쟁(Dirty War)을 지속하여 601 정보대대(Intelligence Battalion 601)의 죽음의 비행대를 통해 수천 명의 좌익 성향 인사 및 반체제 인사에 대한 불법 체포, 고문, 강제 실종, 살해를 자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클랜드 전쟁

1982년 4월, 경제 침체와 인권 탄압으로 인해 하락한 정권의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해 갈티에는 영국령 포클랜드 제도(아르헨티나명: 말비나스 제도)에 대한 군사 침공을 명령하였다. 초기 침공은 아르헨티나 내에서 애국적 지지를 받았으나, 갈티에는 영국이 군사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못 판단하였다. 마거릿 대처 총리가 이끄는 영국 정부는 해군 기동 함대를 파견하였고, 6월 14일 아르헨티나군의 항복으로 전쟁은 종결되었다.

몰락과 재판

포클랜드 전쟁 패배의 책임을 지고 1982년 6월 18일 사임하였으며, 이후 민주 정부가 수립된 후 1983년 체포되었다. 1986년 군사 법정에서 포클랜드 전쟁 수행 부실로 12년형을 선고받았고, 1988년 항소심에서 원심이 확정되어 계급이 박탈되었다. 1989년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의 사면령으로 석방되었다.

말년

석방 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빌라 데보토 교외에서 은둔 생활을 하였다. 2002년 5월 아르헨티나 육군의 날 기념 행사에 초청되어 참석하였으나, 언론인 마르틴 치치올리의 공개 질문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같은 해 7월, 1970년대 후반 아동 납치 및 좌파 성향 인사 18명의 실종 사건 등 새로운 혐의로 기소되어 체포되었으나, 건강 악화로 가택 연금 조치를 받았다. 2002년 8월 췌장암 수술을 받았으며, 2003년 1월 12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향년 7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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