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위목제(Lê Uy Mục, 黎威穆帝, 1488년 6월 14일 ~ 1510년 1월 10일)는 대월(베트남) 후 레 왕조의 제8대 황제로, 재위 기간은 1505년부터 1510년까지이다. 본명은 레뚜언(Lê Tuấn, 黎濬, 여준)이며, 시호는 위목황제(威穆皇帝)이다.
생애와 통치
레 위목제는 후 레 왕조 제6대 황제였던 레 헌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명실록》과 《명사·안남전》에 따르면 레후옌(黎諠)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레 숙종의 서형(庶兄)이다.
위목제는 1504년 즉위 이후 주색을 탐닉하고 폭정을 자행한 것으로 기록된다. 그의 어머니인 소인황태후의 친족인 응우옌쫑(阮種)과 응우옌바탕(阮伯勝)을 총애하고 신뢰하여 중용하였다. 이에 반대하는 태황태후 응우옌티항(阮氏恒)을 비롯한 여러 고위 관료들을 살해하였다.
명나라의 사신 허천석(許天錫)은 그를 풍자하여 '귀왕(鬼王)'이라 부르며 "안남 4백년의 운수는 매우 긴데, 하늘은 어찌하여 귀왕을 내려보냈단 말인가"라는 시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최후와 후계 문제
위목제는 종친들을 잔인하게 살해하여 많은 반감을 샀다. 1509년, 숙부 레떤(Lê Tần)의 모든 아들을 살해하는 과정에서 간수공 레오아인만이 탈출에 성공하였다. 레오아인은 이후 다른 대신들과 함께 거병하여 반기를 들었다.
위목제의 사망에 대해서는 《대월사기전서》에 두 가지 설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는 레오아인에게 사로잡힌 뒤 짐독을 마시고 자살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도주 중 살해되었다는 설이다. 《명사·외국전》에는 응우옌쫑이 위목제를 핍박하여 자살하게 한 뒤 동생 응우옌바탕을 황제로 옹립했고, 이후 레꽝이 응우옌바탕을 주살한 뒤 레오아인을 옹립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기타
위목제의 재위 기간 동안 이후 막 왕조를 세우게 되는 막당중이 천무위도지휘사로 승진하여 세력을 크게 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목제는 연호 '도안카인'(端慶, 1505년~1509년)을 사용하였으며, 능호는 안릉(安陵)이다. 정사에 묘호가 남아 있지 않은 이유는 그의 난폭한 통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나, 구체적인 경위에 대해서는 기록에 따라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