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프리깃 디아나는 19세기 중반 러시아 제국 해군(발트 함대)에 소속되었던 범선 프리깃이다. 이 함선은 러시아 제국의 대일(對日) 외교 임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조 및 제원
디아나는 1851년 5월 21일 러시아 아르한겔스크의 솔롬발라 조선소에서 건조가 시작되어 1852년 5월 19일 진수되었다. 함선 설계는 프리깃 '팔라다'의 도면을 바탕으로 조선기술자 V. F. 스토케가 작성하였고, 건조는 조선기술자 군단의 중령 F. T. 자굴랴예프가 지휘하였다. 디아나는 러시아 제국 해군이 건조한 마지막 52문 장착 범선 프리깃으로 기록된다.
주요 제원은 다음과 같다. 배수량은 약 2,200톤으로 추정되며, 상부 갑판 길이 52.8m, 폭 13.6m, 현측 높이 4.0m, 흘수는 선미 7.0m·선수 5.0m였다. 추진은 순수 범장(帆裝) 방식이었고, 승조원은 486명이었다. 무장은 총 52문의 함포를 탑재하였다.
일본 원정과 임무
1853년 10월 4일, 디아나는 크론슈타트를 출항하여 러시아 극동 지역으로 향했다. 이는 일본에 파견된 외교 사절단의 기함으로 사용되던 프리깃 '팔라다'가 노후화되어 이를 대체하기 위한 것이었다. 디아나는 예프피미 푸탸틴 부제독의 일본 원정 당시 기함으로 사용되었다. 함장은 경험이 풍부한 해군 장교 S. S. 레소프스키 중령이 맡았다.
디아나는 대서양을 횡단하여 리우데자네이루, 발파라이소, 호놀룰루 등을 경유한 뒤 태평양을 건너 1854년 7월 러시아 극동의 데카스트리 만에서 '팔라다'와 합류하였다. 이후 푸탸틴 일행을 태우고 일본으로 향하여 하코다테와 오사카를 거쳐 1854년 11월 22일 시모다(下田) 만에 정박하였다.
침몰
1854년 12월 23일(러시아 구력 12월 11일), 시모다 만에서 발생한 안세이 도카이(安政東海) 지진과 이에 따른 쓰나미로 디아나는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함선은 계류 중 42회 회전할 정도로 격렬하게 흔들렸고, 방향타(舵)를 잃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수리를 위해 시모다에서 약 15마일 떨어진 헤다(戸田) 만으로 이동하던 중, 1855년 1월 7일 갑작스러운 강풍에 전복되어 침몰하였다.
승조원의 귀환과 후속 영향
디아나 침몰 후, 승조원들은 구조된 도면을 바탕으로 일본인 목수들의 도움을 받아 서양식 범선을 건조하였다. 약 300명의 일본인 목수들이 러시아 선원들과 협력하여 두 달 만에 2개 돛대의 스쿠너선을 완성하였으며, 이 배는 건조에 협력한 지역의 이름을 따 '헤다'호로 명명되었다. 배수량 약 100톤, 길이 24m 규모였다. 이 배를 타고 푸탸틴과 일부 승조원은 일본을 남쪽으로 우회하여 1855년 5월 페트로파블롭스크에 도착하였다. 나머지 승조원 중 일부는 상선을 통해 귀환했으며, 일부는 사할린 인근에서 영국군에 포로로 잡히기도 하였다.
일본 정부는 이후 '헤다'호와 유사한 함선 6척의 건조를 지시하여 서양식 해군력 건설에 참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디아나의 침몰과 승조원들의 활동은 일본의 조선 기술 발전에 일정 부분 기여한 사례로 평가된다.
참고 사항
디아나의 침몰 지점은 일본 시즈오카현 후지시 일대(구 미야지마무라)로 알려져 있다. 1987년부터 1998년까지 일본 측 연구자들에 의해 침몰한 디아나의 인양 시도가 이루어졌으나, 성과에 대한 상세한 공개 정보는 제한적이다. 또한 디아나의 닻과 푸탸틴 제독의 동상이 일본 현지에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