랴오중카이(중국어 정체자: 廖仲愷, 간체자: 廖仲恺, 병음: Liào Zhòngkǎi, 한자음: 요중개, 1877년 4월 23일 ~ 1925년 8월 20일)는 중화민국의 정치인이자 혁명가이다. 쑨원(손문)의 측근으로서 중국 국민당(국민당)의 주요 지도자 중 한 명으로 활동했다.
랴오중카이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하카(客家) 계통 화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1902년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했으며, 1905년 중국동맹회(中國同盟會)에 가입하여 혁명 활동에 참여했다. 1909년 일본 주오 대학(中央大學)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1911년 신해혁명이 발생하자 혁명에 참가하여 광둥(廣東) 도독부의 총참의가 되었다.
중화민국 수립 이후에는 위안스카이(袁世凱)에 대항하여 일으킨 제2차 혁명에 가담했으나 실패하여 일본으로 피신했다. 1920년 귀국한 뒤 쑨원의 광둥군 정부(호법정부)에 참여하여 재정부 차장 등을 역임했다. 1923년에는 일본에서 소련 대표 아돌프 요페(Adolf Joffe)와 회담을 열어 국공합작(國共合作)을 추진했으며, 광둥성장, 광둥대원수부 비서장, 국민당 중앙집행위원, 당공안부장, 황푸군관학교 당부대표 등의 직위를 두루 지냈다. 재정 전문가로서 국민당과 광둥 정부의 재정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5년 쑨원 사후에는 국민당 좌파의 중심 인물로서 국민정부의 재정부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20일, 광저우(廣州)에 있는 국민당 중앙당부 앞에서 우파 세력으로 추정되는 무장 세력에 의해 암살당했다. 이 사건은 '랴오중카이 암살 사건'으로 불리며, 이후 국민당 내 좌우파 갈등이 심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랴오중카이는 국공합작의 초기 설계자 중 한 명으로 평가되며, 쑨원의 삼민주의와 개혁 노선을 지지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그의 부인 허샹닝(何香凝) 역시 중국 근대 정치사에서 활동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