랴오둥반도(중국어 간체자: 辽东半岛, 정체자: 遼東半島, 병음: Liáodōng Bàndǎo, 한국어: 요동반도)는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遼寧省) 남부에 위치한 반도이다. 산둥반도(山東半島)에 이어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반도이며, 황해(黃海)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지리적 위치
랴오둥반도는 북위 40°00′, 동경 122°30′에 위치한다. 서쪽으로는 보하이만(渤海灣)의 일부인 랴오둥만(遼東灣)과 접하고, 동쪽으로는 서조선만(서한만), 남쪽으로는 산둥성이 있다. 서쪽의 다랴오강(大遼河, 요하의 하류 구간) 하구와 동쪽의 압록강 하구 사이에 위치하며, 행정 구역상으로는 부성급시(副省級市)인 다롄시(大連市) 전체와 잉커우시(營口市), 안산시(鞍山市), 단둥시(丹東市)의 일부 지역을 포함한다.
지형적으로는 창바이산맥(長白山脈)에서 이어지는 산맥대의 남쪽 부분을 이루며, 반도 위의 산맥은 첸산산맥(千山山脈)으로 불린다.
어원
'랴오둥'(遼東)이라는 명칭은 문자 그대로 "요하(遼河)의 동쪽"이라는 뜻이다. 전국시대 연(燕)나라가 설치한 요동군(遼東郡)에서 유래하였으며, 당시 요동군은 현대의 랴오닝성-지린성 경계에서부터 한반도의 청천강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아우르고 있었다. 현대적 의미의 '랴오둥'은 랴오닝성에서 요하 및 다랴오강의 동쪽(좌안) 절반을 가리킨다.
역사
고대에는 신락문화(新樂文化) 등의 신석기인들이 거주하였으며, 이후 고조선의 영토였다. 기원전 4세기 후반, 팽창하던 중국 전국시대 연(燕)나라가 고조선으로부터 이 지역을 정복하고 요동군을 설치하였다.
진(秦)나라와 한(漢)나라를 거쳐, 한나라 붕괴 후에는 여러 세력이 교대로 지배하였다. 이후 전연(前燕), 전진(前秦), 후연(後燕), 고구려의 지배를 거쳐 당(唐)나라가 재정복하였다. 698년 발해(渤海)가 이 지역을 지배하였고, 이후 요(遼)나라, 금(金)나라, 원(元)나라, 명(明)나라, 청(清)나라가 차례로 통치하였다.
청나라 시기에는 만주족의 발상지로서 신성시되어 한족의 이주가 금지되었으나, 1876~1879년 화북 대기근 당시 산둥성과 허베이성의 난민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금주 정책이 완화되었고, 이는 '창관둥'(闖關東)으로 불리는 대규모 이주 운동의 시작이 되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랴오둥반도는 주요 제국주의 각축장이었다. 청일전쟁(1894~1895)의 주요 격전지였으며,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일본에 할양되었으나, 러시아·프랑스·독일의 삼국간섭(1895)으로 반환되었다. 이후 러시아가 여순(旅順, Port Arthur)을 조차하여 군사적 요충지로 삼았고, 이는 러일전쟁(1904~1905)의 주요 전장이 되었다. 포츠머스 조약(1905)으로 일본에 조차권이 이전되어 관동주(關東州)로 편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함께 랴오닝성이 설치되어 현재에 이른다.
주요 도시
반도 내 주요 도시로는 다롄시(大連市), 뤼순커우구(旅順口區, 구 여순), 잉커우시(營口市)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