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클런 매쿼리(Lachlan Macquarie, 1762년 1월 31일 ~ 1824년 7월 1일)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군 장교이자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주의 초대 총독(1810년~1821년 재임)이다.
생애 및 군 경력 매쿼리는 스코틀랜드 서해안 이너헤브리디스 제도의 울바섬(Isle of Ulva)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역시 래클런 매쿼리라는 이름으로, 목수 또는 방앗간 주인으로 일했으며 클랜 매쿼리(Clan MacQuarrie) 추장의 사촌이었다. 어머니 마거릿은 로크부이의 지주인 머독 맥클레인의 누이였다.
1776년 제84보병연대에 입대하여, 1777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독립 전쟁에 참전하였다. 이후 제71보병연대에서 복무하며 뉴욕, 찰스턴, 자메이카에서 근무했다. 1784년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중위로 복무했으며, 이후 인도와 이집트에서 장교로 활동했다. 1789년 대위, 1801년 소령, 1805년에는 제73보병연대를 지휘하는 중령으로 진급하였다.
1793년 제인 자비스와 첫 결혼을 했으나, 3년 후 그녀가 결핵으로 사망했다. 1807년 엘리자베스 헨리에타 캠벨과 재혼하였다.
뉴사우스웨일스 총독 1809년 4월, 매쿼리는 뉴사우스웨일스의 총독으로 임명되어 1810년 1월 1일부터 직무를 수행했다. 그의 재임 기간(1810년~1821년) 동안 오스트레일리아는 유배 식민지(penal colony)에서 자유 정착민 중심의 식민지로 전환되는 중요한 사회 변화를 겪었다.
그는 시드니의 도시 계획을 수립하고, 도로·교량·병원·병영 등 대규모 공공 건축 사업을 추진하여 식민지의 기초 인프라를 구축했다. 또한 형기(刑期)를 마친 이민자(Emancipist)들의 권리 향상을 위해 노력했으며, 이는 대지주 및 보수파(Exclusionist)와의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평가 및 유산 매쿼리의 무덤(스코틀랜드)에 새겨진 비문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아버지(Father of Australia)"라는 표현이 포함되어 있다. 다만 오늘날에는 원주민(Aboriginal Australians)에 대한 그의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적 평가가 존재한다.
그의 이름을 딴 지명으로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매쿼리섬(Macquarie Island), 매쿼리대학교(Macquarie University), 시드니의 매쿼리 거리(Macquarie Street) 등이 있으며, 금융 기관인 맥쿼리 그룹(Macquarie Group)의 명칭 역시 그의 성에서 유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