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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드왈드

래드왈드(고대 영어: Rædwald, [ˈrædwɑɫd]→'신중한 권력' 또는 '의회의 힘'), 라에드왈드 또는 레드왈드(라틴어: Raedwaldus)로도 표기되며, 7세기 초 앵글로색슨 칠왕국 중 하나인 동앵글리아(오늘날의 잉글랜드 노퍽 주와 서퍽 주 지역)의 왕이다. 그는 튀틸라(Tytila)의 아들이자 우파(Wuffa)의 손자로, 우핑가스(Wuffingas) 왕조 출신이다. 재위 기간은 약 599년부터 624년경까지로 추정된다.

래드왈드는 동앵글리아 왕들 중 이름 이상의 기록이 남아 있는 최초의 인물이다. 그의 치세에 관한 상세 기록은 매우 부족한데, 이는 9세기 바이킹의 침략으로 동앵글리아 지역의 수도원들이 파괴되어 많은 문서가 함께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가장 중요한 사료는 731년에 완성된 베다(Bede)의 《영국인 교회사》(Historia ecclesiastica gentis Anglorum)이다.

그는 처음에는 켄트 왕 애설버트(Æthelberht)의 종주권 아래 있었으나, 616년 노섬브리아의 애설프리스(Æthelfrith)를 상대로 한 이들 강 전투(Battle of the River Idle)에서 승리한 후, 자신의 권위에 복종하는 에드윈(Edwin)을 노섬브리아의 새 왕으로 옹립하였다. 이 전투에서 애설프리스와 래드왈드의 아들 래겐헤어(Rægenhere)가 모두 전사했다. 이후 약 616년부터 래드왈드는 험버 강 이남의 잉글랜드 왕들 중 가장 강력한 군주가 되었으며, 베다는 그를 남부 앵글로색슨 왕국들 위에 군림한 네 번째 통치자(브레트왈다, Bretwalda)로 기록하였다.

래드왈드는 동앵글리아 최초로 기독교로 개종한 왕으로, 605년 이전에 켄트 왕실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귀국 후에는 기독교 제단과 이교 신전을 함께 유지하는 혼합적 종교 정책을 폈다. 에식스와 켄트 왕국이 이교로 회귀했을 당시 동앵글리아에서 기독교가 명맥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624년경 사망했으며, 많은 학자들은 서퍽 주 우드브리지 인근 서턴 후(Sutton Hoo)에서 발견된 선박 매장분(ship-burial)의 주인공이 래드왈드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1998년 동일 유적지 인근에서 발견된 소형 선박 매장분은 그의 아들 래겐헤어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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