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팽 아질(Le Lapin Agile)은 프랑스 파리 18구 몽마르트르 언덕에 위치한 역사적인 카바레이다. 정식 명칭은 '오 라팽 아질(Au Lapin Agile)'이며, 프랑스어로 '민첩한 토끼'라는 뜻을 가진다. 주소는 뤼 데 솔(Rue des Saules) 22번지로, 몽마르트르의 대표적인 문화 유적지 중 하나이다.
역사
이 건물은 1860년경 '오 랑데부 데 볼뢰르(Au rendez-vous des voleurs, 도둑들의 만남의 장소)'라는 이름의 술집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이후 벽에 유명 살인자들의 초상화가 장식되면서 '카바레 데 아사생(Cabaret des Assassins, 암살자들의 카바레)'으로 불리게 되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강도단이 침입하여 주인의 아들을 살해한 사건에서 이 이름이 유래하였다.
1875년, 화가이자 캐리커처 작가인 앙드레 질(André Gill)이 냄비에서 뛰쳐나오는 토끼를 그린 간판을 제작하였다. 이 그림으로 인해 현지인들은 이곳을 '르 라팽 아 질(Le Lapin à Gill, 질의 토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후 언어유희를 거쳐 '라팽 아질(Lapin Agile, 민첩한 토끼)'로 정착되었다. 원본 그림은 1893년 도난당했으며, 이후 목재에 재현한 복제품이 대신 걸렸다.
20세기 초, 이 카바레는 철거 위기에 처했으나 당시 유명한 카바레 가수였던 아리스티드 브뤼앙(Aristide Bruant)이 매입하여 보존하였다. 이후 '페르 프레데(Père Frédé)'로 알려진 프레데리크 제라르(Frédéric Gérard)가 운영하면서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자리 잡았다.
예술사적 의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라팽 아질은 파블로 피카소,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기욤 아폴리네르, 모리스 위트릴로, 막스 자코브 등 당대 보헤미안 예술가들과 문인들이 모여 교류하던 장소였다. 피카소는 1905년 이 카바레를 배경으로 한 그림 《오 라팽 아질(Au Lapin Agile)》을 제작하였으며, 이 작품에서 자신을 할리퀸으로 묘사하였다. 해당 작품은 현재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1910년에는 작가 롤랑 도르줄레스(Roland Dorgelès)가 프레데가 기르던 당나귀 '롤로(Lolo)'의 꼬리에 붓을 묶어 그림을 그리게 한 뒤, 이를 이탈리아 화가 '보로날리'의 작품이라고 속여 전시회에 출품하여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유명한 에피소드가 이곳에서 발생하였다.
현황
라팽 아질은 현재까지도 전통적인 카바레의 형태를 유지하며 운영되고 있다. 마이크 없이 진행되는 샹송 공연, 시 낭독, 즉흥 퍼포먼스 등이 이루어지며, 화려한 쇼보다는 문학과 음악이 중심이 되는 '지적 예술 살롱'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공연은 주로 프랑스어로 진행되며, 15세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프랑스 전통 샹송과 시가 레퍼토리에 포함된다.
1993년에는 미국의 코미디언이자 극작가인 스티브 마틴(Steve Martin)이 이곳을 배경으로 한 희곡 《피카소 앳 더 라팽 아질(Picasso at the Lapin Agile)》을 발표하여 성공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