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라인하르트 셰어(Carl Friedrich Heinrich Reinhard Scheer, 1863년 9월 30일 ~ 1928년 11월 26일)는 독일 제국 해군(Kaiserliche Marine)의 제독이다.
생애 및 경력
셰어는 1863년 9월 30일, 당시 헤센 선제후국(현재의 니더작센주)의 오베른키르헨에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1879년 4월 22일, 15세의 나이로 해군 사관후보생에 입대하여 범선 프리깃 SMS 니오베(Niobe)에서 첫 해상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킬(Kiel)의 해군학교에서 장교 훈련을 받았으며, 1884년부터 1886년까지 동아프리카 함대에서 복무했다.
셰어는 순양함과 전함의 지휘관을 역임하며 승진을 거듭했다. 1907년에는 전함 함장이 되었고, 1910년에는 헤닝 폰 홀첸도르프 제독 휘하에서 대양함대 참모장을 지냈다.
제1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 셰어는 대양함대 제2전대 사령관이었으며, 이후 최신예 전함들로 구성된 제3전대를 지휘했다. 1916년 1월, 후고 폰 폴 제독의 건강 악화로 인한 사임 후 셰어는 제독으로 승진하여 독일 대양함대(High Seas Fleet) 총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셰어는 전임자와 달리 공격적인 함대 운용을 추구했다. 1916년 5월 31일부터 6월 1일까지 벌어진 유틀란트 해전(Battle of Jutland, 독일명: 스카게라크 해전)에서 독일 대양함대를 직접 지휘하였다. 이 해전은 제1차 세계 대전 최대 규모의 함대 결전이었으며, 양측 모두 큰 피해를 입었으나 전술적 승패는 명확히 가려지지 않았다. 셰어는 이 전투 이후 무제한 잠수함 작전(unrestricted submarine warfare)을 강력히 주장하였고, 이는 카이저 빌헬름 2세에 의해 최종 허용되었다.
1918년 8월, 셰어는 해전지휘부(Seekriegsleitung, SKL)의 초대 수장 겸 제독참모장으로 임명되었고, 프란츠 폰 히퍼 제독이 대양함대 사령관직을 이어받았다. 셰어와 히퍼는 영국 그랜드 플릿(Grand Fleet)과의 최종 결전을 계획했으나, 전쟁에 지친 수병들이 빌헬름스하펜에서 반란을 일으키면서 작전은 무산되었다.
말년 및 사후
전쟁 종전 후 셰어는 은퇴하였다. 그는 엄격한 규율주의자로 알려져 해군 내에서 "철가면을 쓴 사나이(man with the iron mask)"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1919년 회고록을 집필하였고, 1925년 자서전을 출간했다. 1928년 11월 26일, 바이에른주 마르크트레트비츠에서 사망하였으며, 바이마르 시립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 이름을 기려, 1930년대에 건조된 크릭스마리네(Kriegsmarine)의 도이칠란트급 중순양함(포켓 전함) 2번함은 아드미랄 셰어(Admiral Scheer)로 명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