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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오넬 파이닝거

라이오넬 파이닝거(Lyonel Charles Feininger, 1871년 7월 17일 ~ 1956년 1월 13일)는 독일계 미국인 화가이자 삽화가, 만화가, 판화가, 사진가로,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 미술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이다.

생애

라이오넬 파이닝거는 독일계 이민 가문의 자녀로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음악가 집안으로, 아버지는 바이올린 연주자, 어머니는 가수이자 피아니스트였다. 1887년 독일로 건너가 함부르크 공예학교와 베를린 미술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초기에는 그로테스크한 삽화를 그리는 소묘가이자 만화가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1890년대에는 미국과 독일의 잡지 및 신문에 만화와 삽화를 기고하며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1906년 이후 화가로서의 길을 본격적으로 결심하고 파리에 여러 차례 체류하면서 전위 회화와 접촉하며 자신만의 양식을 모색하였다. 1911년 뮌헨의 '블라우에 라이터'(Der Blaue Reiter) 파에 가입하였으며, 이 시기에 큐비즘과 오르피슴의 영향을 받아 그의 독특한 화풍이 확립되었다.

예술적 특징

파이닝거의 작품은 프리즘의 분광이 결정화된 것처럼 보이는 시가지, 탑, 다리, 선박 등의 구축물을 주로 다루었다. 교차하는 직선과 색면의 리드미컬한 구성을 통해 추상과 구상의 개념적 구별을 지양하는 자율적인 화면을 창조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작품은 입체주의의 구조적 분석과 표현주의의 감정적 표현을 결합한 독자적인 양식을 보여준다.

바우하우스 활동

1919년 발터 그로피우스가 바우하우스를 설립할 때 파이닝거는 가장 먼저 임명된 마스터(포름 마이스터)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바우하우스에서 판화 공방을 담당하며 연구와 교육 활동을 수행하였다. 또한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알렉세이 폰 야울렌스키와 함께 '청색의 네 사람' 그룹을 결성하여 상호 연구와 수련을 쌓았다.

말년

1936년 나치 정권에 의해 독일에서 추방되어 미국으로 돌아왔다. 나치 정권은 그의 작품을 '퇴폐 예술'로 규정하였다. 미국으로 귀환한 이후의 만년 작품은 특히 구성이 엄격한 것이 특징이다. 1956년 뉴욕에서 사망하였다.

그에게 붙여진 '독일 표현파의 거장'이라는 평가는 그의 작품과 더불어 미국의 젊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작품은 현재 전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독일 작센안할트주에는 그의 이름을 딴 파이닝거 미술관(Museum Feininger)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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