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샌더 스푸너(Lysander Spooner, 1808년 1월 19일 – 1887년 5월 14일)는 미국의 변호사, 기업가, 작가, 정치 철학자로, 개인주의적 무정부주의(Individualist Anarchism) 사상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노예제 폐지 운동가이자 자연권 법이론가로도 활동했으며, 흔히 미국의 보스턴 무정부주의 전통과 연관되어 언급된다.
생애
라이샌더 스푸너는 매사추세츠주 애솔(Athol)의 농장에서 1808년 1월 19일에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아사(Asa) 스푸너였으며, 조상 중 한 명인 윌리엄 스푸너는 1637년 플리머스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이샌더는 아홉 자녀 중 둘째였다. 그의 아버지는 이신론자였으며, 두 아들을 그리스 신화와 스파르타 영웅의 이름을 따 '리앤더'(Leander)와 '라이샌더'(Lysander)라고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스푸너는 대학을 다니지 않았지만 유명한 변호사들 아래에서 법률을 공부했다. 당시 매사추세츠 법률에 따르면 대학 졸업자는 3년간, 비졸업자는 5년간 법률 수련이 요구되었는데, 스푸너는 이 제도를 부유층에게 유리한 차별적 독점 체제로 간주하고 3년 만에 변호사로 개업했다. 이후 그는 모든 변호사 자격 요건에 반대했다.
미국 서신우편회사 (American Letter Mail Company)
스푸너는 정부 규제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1844년 미국 서신우편회사를 설립하여 매우 비쌌던 미국 공식 우편 제도와 경쟁했다. 그는 미국 정부의 우편 독점에 도전했으나, 정부의 법적 압박과 1851년 독점을 강화한 법률로 인해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다만 그의 경쟁이 촉발한 영향으로 우편 요금이 5센트에서 3센트로 인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예제 폐지 운동
스푸너는 1845년 저서 『노예제의 위헌성(The Unconstitutionality of Slavery)』을 발표하여, 미국 헌법이 노예제를 지지한다는 해석에 법률적·자연권적 논증으로 반박했다. 그는 노예제를 지지하는 헌법 조항이 실제로는 그러한 해석을 뒷받침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며, 이 저서는 노예제 폐지론자들 사이에서 논쟁을 촉발했다. 이후 남북전쟁 시기까지 적극적으로 노예제 폐지를 주장했다.
주요 저작과 사상
스푸너의 주요 저작으로는 『노예제의 위헌성』(1845), 『배심재판에 관한 논고』(1852), 『반역 없음(No Treason)』(1870) 등이 있다. 그는 임금 노동에 반대하고, 각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의 결실을 온전히 소유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자유은행제를 지지했으며, 입법부와 강제적 정부를 거부하고 그 대안으로 구성원 전원이 소유하는 자발적 상호보험회사 형태의 '정치적 법인'을 제안했다.
그의 사상은 이후 좌파 자유지상주의(Left-libertarianism)와 우파 자유지상주의(Right-libertarianism) 정치 이론의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스푸너의 『노예제의 위헌성』은 2008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District of Columbia v. Heller 판결에서도 인용된 바 있다.
사망
스푸너는 결혼하지 않았으며 자녀가 없었다. 그는 1887년 5월 14일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사망하여 보스턴의 포레스트 힐스 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