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울 6세 드 고쿠르 (프랑스어: Raoul VI de Gaucourt, c. 1370년경 – 1430년 1월 30일)는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 프랑스의 귀족이자 군인으로, 고쿠르(Gaucourt)와 아르지쿠르(Hargicourt)의 영주(seigneur)였다. 백년 전쟁 시기 프랑스 왕실의 충실한 신하였으며, 샤를 6세와 샤를 7세의 궁정에서 중요한 군사적,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다.
생애 및 경력
- 가문 배경: 라울 드 고쿠르 가문은 피카르디(Picardy) 지역의 유력한 귀족 가문이었다. 라울 6세는 라울 5세 드 고쿠르(Raoul V de Gaucourt)와 마르그리트 드 프리메크(Marguerite de Preimec)의 아들로 태어났다.
- 왕실 봉사: 그는 프랑스 왕 샤를 6세와 그의 후계자인 샤를 7세의 충실한 시종(Chambellan)이자 조언자(Conseiller)로 활동했다. 특히 프랑스가 잉글랜드와의 백년 전쟁과 아르마냐크-부르고뉴 내전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아쟁쿠르 전투: 1415년 10월 25일 벌어진 아쟁쿠르 전투에 프랑스군 지휘관 중 한 명으로 참전했다. 이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대패했고, 라울 6세는 부상을 입고 잉글랜드군에 포로로 잡혔다. 그는 잉글랜드에서 몇 년간 억류되었다가 상당한 몸값을 지불한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 백년 전쟁에서의 활약: 프랑스로 돌아온 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프랑스 왕실을 위해 싸웠다.
- 1424년 베르누이 전투(Battle of Verneuil)에서 다시 포로로 잡히는 고난을 겪기도 했다.
- 1429년 잔 다르크가 이끄는 프랑스군에 합류하여 오를레앙 포위전 해제에 기여했으며, 이어진 자르조 전투(Battle of Jargeau)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잔 다르크와 함께 왕 샤를 7세의 랭스 대관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 주요 직책: 그는 루앙(Rouen)의 총독(Gouverneur)을 역임하는 등 여러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
가족 관계
라울 6세 드 고쿠르는 이사벨 드스투트빌(Isabelle d'Estouteville)과 결혼하여 자녀를 두었으며, 가문의 대를 이었다.
사망
라울 6세 드 고쿠르는 1430년 1월 30일에 사망했다. 그는 백년 전쟁이라는 격동의 시기에 프랑스 왕실에 충성을 바치고 국가의 안정을 위해 노력했던 중요한 귀족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