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르스 포르세나(Lars Porsena, 에트루리아어: Larth Pursna)는 기원전 6세기 후반 에트루리아의 도시 국가 클루시움(Clusium, 현재 키우시)의 왕(루크모 Lucumo)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로마 건국 초기 역사에서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Tarquinnius Superbus) 왕정이 무너진 후, 쫓겨난 타르퀴니우스를 복위시키기 위해 로마를 공격한 에트루리아 군주의 대표적인 사례로 고대 문헌에 등장한다.
주요 행적과 기록 고대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Livius)와 플루타르코스(Plutarchos), 타키투스(Tacitus) 등에 따르면, 포르세나는 타르퀴니우스의 요청을 받거나 에트루리아의 패권을 강화하기 위해 로마를 포위 공격했다. 이 전쟁에서 호라티우스 코클레스(Horatius Cocles)가 시불리우스 다리(Pons Sublicius)를 지키며 에트루리아군의 진격을 지연시켰다는 일화, 무키우스 스카에볼라(Mucius Scaevola)가 포르세나 암살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오른손을 불태워 충성을 증명했다는 일화, 인질로 잡혀간 클로엘리아(Cloelia)가 탈출했다는 일화 등이 전설적으로 전해진다.
전쟁의 결과에 대해서는 사료마다 차이가 있다. 리비우스는 로마가 항복하지 않고 강화 조약을 맺어 독립을 지켰다고 서술하나, 타키투스 등은 로마가 일시적으로 포르세나에게 정복당하거나 굴욕적인 조약을 맺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고고학적 증거와 후대 연구에서는 포르세나의 공격이 실제 역사적 사건이었으나, 로마의 건국 신화와 영웅담이 결합되어 과장되거나 변형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죽음과 유산 포르세나의 죽음과 클루시움의 이후 운명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로마 역사가 플리니우스(Plinius)는 포르세나의 무덤이 클루시움에 있었으며, 그 규모가 매우 거대했다고 기록했으나 현재까지 명확히 확인된 바는 없다. 그는 로마 초기 공화정 시기의 위기를 상징하는 외부의 강력한 적으로서, 로마의 자유와 공화정 수호 의지를 시험한 인물로 역사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