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그랑주 점(Lagrange point)은 천체역학에서 두 개의 큰 천체가 중력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계에서, 질량이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제3의 천체가 두 큰 천체에 대해 상대적으로 정지해 있을 수 있는 5개의 평형점을 가리킨다. 라그랑주 포인트 또는 칭동점(秤動點)이라고도 불린다.
개요
라그랑주 점은 원형으로 제한된 삼체 문제(restricted three-body problem)의 정지해(stationary solution)에 해당한다. 질량이 큰 두 천체가 공통의 질량 중심을 기준으로 원형 궤도를 운동할 때, 두 천체의 중력과 원심력이 평형을 이루는 지점이 5개 존재한다. 이 지점에서 제3의 물체는 두 큰 천체에 대해 상대적으로 고정된 위치를 유지할 수 있다. 이는 인공위성이나 우주 망원경을 배치하기에 유리한 위치로 활용된다.
역사
라그랑주 점의 발견에는 두 수학자의 기여가 있었다. 세 개의 공선 라그랑주 점(L1, L2, L3)은 1750년경 스위스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Leonhard Euler)에 의해 먼저 발견되었다. 이후 1772년, 이탈리아 태생의 프랑스 수학자 조제프-루이 라그랑주(Joseph-Louis Lagrange)가 삼체 문제에 관한 논문에서 나머지 두 점(L4, L5)을 발견하였다. 라그랑주는 뉴턴 역학을 재구성한 라그랑주 역학을 창안하여 이 문제를 분석하였으며, 그의 이름을 따 이 점들이 라그랑주 점으로 명명되었다.
다섯 개의 라그랑주 점
다섯 개의 라그랑주 점은 각각 L1, L2, L3, L4, L5로 표기된다.
L1
L1은 두 큰 천체를 잇는 직선 위에 위치하며, 상대적으로 질량이 작은 천체 쪽에 더 가깝다. 예를 들어 태양-지구 계에서 L1은 지구와 태양 사이, 지구로부터 약 150만 km 떨어진 지점에 있다. 이 지점에서는 태양의 중력과 지구의 중력이 서로 상쇄되어 궤도 주기가 지구의 궤도 주기와 일치하게 된다. 태양-지구 L1은 태양 관측에 이상적인 위치로, 소호 태양 관측 위성(SOHO), ACE(Advanced Composition Explorer) 등의 우주선이 이 지점 주변의 궤도에서 운용되고 있다.
L2
L2는 두 큰 천체 중 작은 천체의 바깥쪽, 즉 두 천체를 잇는 직선 상에서 작은 천체 너머에 위치한다. 태양-지구 계에서 L2는 지구로부터 태양 반대 방향으로 약 150만 km 떨어진 지점에 있다. 이 위치는 우주 망원경에 매우 적합한데, 태양과 지구 및 달이 항상 같은 방향에 있어 차폐와 열 제어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JWST)이 2022년부터 태양-지구 L2 지점에서 운용 중이며, 그 외에 허셜 우주망원경, 플랑크 위성, 가이아 우주망원경 등이 L2에서 운용되었다.
L3
L3는 두 큰 천체 중 질량이 큰 천체의 바깥쪽, 즉 두 천체를 잇는 직선 상에서 큰 천체 너머에 위치한다. 태양-지구 계에서 L3는 태양의 반대편, 지구 궤도보다 약간 바깥쪽에 해당한다. 이 지점은 과학 소설이나 만화에서 반대편 지구(Counter-Earth)가 존재하는 장소로 설정되곤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행성들의 중력 섭동으로 인해 자연 천체가 안정적으로 존재하기 어렵다.
L4와 L5
L4와 L5는 두 큰 천체를 연결한 선을 한 변으로 하는 정삼각형의 나머지 두 꼭짓점에 위치한다. 즉, 작은 천체의 궤도 상에서 각각 60° 앞서는 위치(L4)와 60° 뒤처지는 위치(L5)에 해당한다. 이 두 점은 삼각 라그랑주점 또는 트로이 점(Trojan point)이라고도 불린다. L4와 L5는 특정 질량비 조건(큰 천체의 질량이 작은 천체의 약 24.96배 이상)에서 안정적인 평형 상태를 유지한다.
안정성
L1, L2, L3은 불안정 평형점으로, 이 지점에 있는 물체가 미세하게 벗어나면 점차 멀어지게 된다. 따라서 이 지점들에서는 궤도 유지(station-keeping)를 위한 추력이 필요하다. 다만 이 지점들을 중심으로 한 주기 궤도(헤일로 궤도, 리사주 궤도)가 존재하여, 우주선이 비교적 적은 연료로 장기간 체류할 수 있다.
반면 L4와 L5는 안정 평형점이다. 이 지점에서 물체가 약간 벗어나더라도 코리올리 힘(Coriolis force)에 의해 다시 평형점 주변의 안정된 궤도(강낭콩 모양의 궤도)로 되돌아온다. 이 때문에 태양-목성 L4와 L5 지점에는 수천 개의 트로이 소행성군(Trojan asteroids)이 존재하며, 태양-지구 L4와 L5 지점에서도 소행성(2010 TK7, 2020 XL5)이 발견되었다.
우주 탐사에서의 활용
라그랑주 점은 우주 탐사에서 중요한 거점으로 활용된다. 태양-지구 L1은 태양풍과 태양 활동을 관측하기 위한 우주선의 위치로 사용되며, L2는 심우주 관측을 위한 우주 망원경의 위치로 사용된다. 지구-달 L1은 달 탐사 임무의 중간 기착지로, L2는 달 뒷면 통신 중계 위성의 위치로 활용된다. 대한민국의 달 궤도선 다누리 또한 라그랑주 점을 활용한 탄도형 달 전이 궤도(WSB 이론)를 통해 발사되었다.
태양계에서의 자연적 존재
태양-목성 L4와 L5에는 그리스 진영과 트로이 진영으로 구분되는 수천 개의 트로이 소행성군이 존재한다. 토성의 위성 테티스(Tethys)는 L4와 L5에 각각 텔레스토(Telesto)와 칼립소(Calypso)라는 작은 위성을 가지고 있으며, 디오네(Dione) 역시 L4에 헬레네(Helene), L5에 폴리데우케스(Polydeuces)라는 동궤도 위성을 보유하고 있다. 지구-달 L4와 L5에는 코르딜레프스키 구름(Kordylewski cloud)이라 불리는 행성간 먼지 구름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