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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가제트

라 가제트(La Gazette)는 1631년 5월 30일 프랑스 파리에서 창간된 주간 신문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정기 간행물 중 하나로 평가된다. 창간자는 루이 13세의 주치의였던 테오프라스트 르노도(Théophraste Renaudot)이며, 당시 프랑스의 실권자였던 리슐리에 추기경(Richelieu)의 후원 아래 국왕의 특권(특허)을 받아 발행되었다.

개요

  • 창간: 1631년 5월 30일, 파리
  • 창간자: 테오프라스트 르노도(프로테스탄트 출신으로 가톨릭으로 개종한 의사)
  • 후원: 리슐리에 추기경
  • 발행 주기: 주간(초기) → 격주 간행(1762년 이후) → 일간(1792년 이후)
  • 폐간: 1915년 9월 30일
  • 초기 발행부수: 약 300~800부
  • 주요 내용: 정치 및 외교 문제, 궁정 소식, 외국 소식

발행 배경과 특징

리슐리에 추기경은 왕권 강화를 위한 여론 형성 수단으로서 신문 창간을 추진하였으며, 이를 위해 르노도에게 발행을 위임하였다. 라 가제트는 국왕의 특권을 근거로 발행되었으며, 국왕 회의(Conseil du roi)로부터 정치 정보에 대한 독점권을 부여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초기에는 매주 토요일마다 4페이지 분량의 주간지로 발행되었으며, 외국, 프랑스 본토 및 궁정에서 전해지는 소식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주로 정치와 외교 관련 보도에 특화되었고, 대외 정책 보도를 통해서도 내정 사안을 다루었다는 평가가 있다. 초기 편집진에는 다오지에(d'Hozier), 부튀르(Voiture), 보트뤼(Bautru), 라칼프레네드(La Calprenède) 등이 참여하였으며, 루이 13세 본인도 취미로 기고에 참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7세기에는 수도에서 8,000부가 인쇄되었고, 지방에는 35개 판본으로 배포되었다고 한다.

역사적 변천

  • 1762년: 제호(題號)를 '가제트 드 프랑스(Gazette de France)'로 변경하고, 부제를 "왕실 정부의 공식 기관지"로 명명하였으며, 발행 주기를 격주 간행으로 조정하였다.
  • 1787년: 샤를조제프 팡쿠케(Charles-Joseph Panckoucke)가 임차 운영하였으며, 그가 소유한 '메르퀴르 드 프랑스(Mercure de France)' 및 창간 직전의 '모니퇴르 위니베르셀(Moniteur universel)'과 함께 운영되었다.
  • 프랑스 혁명기: 라 가제트는 혁명 사건에 대해 대체로 침묵하였으며, 1789년 7월 14일의 바스티유 습격 사건조차 다루지 않고 정부의 공식 행위만을 보도하는 데 머물렀다. 이에 팡쿠케는 구성 국민의회의 논의 내용을 전달하는 보완 간행물 '가제탱(Gazettin)'을 발행하였다.
  • 1791년: 외무부가 라 가제트를 인수하였고, 니콜라 팔레(Nicolas Fallet)가 편집장으로 임명되어 지롱드파의 논조(tribune)가 되었으며, 이후 샹포르(Chamfort)가 그 뒤를 이었다.
  • 1792년 5월 1일: 일간지로 전환되었고, 1793년 1월 21일 루이 16세 처형 이후 '가제트 나시오날 드 프랑스(Gazette nationale de France)'로 제호가 변경되었다.
  • 19세기 이후: 정권에 따라 정치적 성향이 변화하여, 제1제정기에는 보나파르트파, 왕정복고기에는 왕당파의 색채를 띠었다. 제3공화국 시기에는 다시 '라 가제트 드 프랑스(La Gazette de France)'로 명칭이 바뀌었고, 레지티미스트(정통왕당파), 이후 오를레앙파 진영의 기관지 성격을 띠었다. 샤를 모라스(Charles Maurras)와 자크 뱅빌(Jacques Bainville) 등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폐간: 1915년 9월 30일 자정(創刊 이후 약 284년) 발행을 중단하였다.

어원 및 관련 개념

'가제트(Gazette)'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어 '가제타(gazzetta)'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원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유통된 뉴스 시트의 명칭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라 가제트의 직접적인 전신(前身)으로는 1611년부터 1648년까지 간행된 '메르퀴르 프랑수아(Mercure françois)'가 거론된다. 한편, 프랑스 최초의 정기 간행물 자리는 1631년 초에 창간된 '누벨 오디네르 드 디베르 앵드루아(Nouvelles ordinaires de divers endroits)'가 차지하는 것으로 보나, 르노도의 라 가제트는 프랑스 최초의 대표적 주간 신문으로 평가된다.

유산

라 가제트는 1915년까지 약 284년간 발행되어 프랑스 신문사(社) 중에서 가장 오래된 축에 속하였으며, 프랑스 저널리즘의 기원을 상징하는 매체로 평가받는다. 르노도는 라 가제트 외에도 1629년에 '부로 다드레스(Bureau d'adresse)'라는 기관을 설립하여 프랑스 광고와 언론의 창시자로 불린다. 그의 사망 후에는 아들 이삭(Isaac)이 운영을 계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 자료

  • 프랑스어 위키백과 「La Gazette (France)」 항목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Britannica) 「La Gazette」 및 「Théophraste Renaudot」 항목
  • 유니베르살 백과사전(Encyclopædia Universalis) 「Gazette, la puis Gazette de France」 항목
  • 스테판 아프메마예르(Stéphane Haffemayer), L'Information dans la France du XVIIe siècle : La Gazette de Renaudot, 2002
  • 프랑스 국립도서관(BnF) 갈리카(Gallica) 전자 도서관의 원본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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