딘 구더햄 애치슨(Dean Gooderham Acheson, 1893년 4월 11일 ~ 1971년 10월 12일)은 미국의 민주당 정치인이자 변호사였으며, 해리 S. 트루먼 행정부에서 제51대 미국 국무장관(1949년~1953년)을 역임하였다.
코네티컷주 미들타운에서 태어난 애치슨은 예일 대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로스쿨에서 법학을 공부하였으며, 이후 미국 대법원 재판관 루이스 브랜다이스의 서기로 근무하였다. 1933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재무부 차관으로 임명되면서 정계에 입문하였고, 1940년 국무부로 복귀하여 제2차 세계 대전 중 경제 전쟁 정책 수립에 관여하였다.
애치슨은 냉전 시기 미국 외교 정책의 핵심 설계자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트루먼 독트린, 마셜 플랜,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의 창설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국제 통화 기금(IMF)과 세계은행의 설립에도 관여하였다. 또한 유엔에서의 미국 회원 지위를 지지하였다.
그의 가장 논쟁적인 행보 중 하나는 1950년 1월 12일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행한 '애치슨 라인(Acheson Line)' 연설이었다. 이 연설에서 그는 미국의 극동 방어선에서 한국을 제외함으로써, 이후 한국 전쟁(1950년~1953년) 발발에 영향을 주었다는 해석이 존재한다. 다만 현대의 연구 성과에 따르면 애치슨 선언이 북한의 남침을 직접 유도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애치슨은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의 반공주의 공세 당시 국무부 직원들의 방어자로 나서 매카시의 표적이 되기도 하였다. 그는 베트남 전쟁 초기에는 미국의 개입을 지지하였으나, 이후 평화 협상을 위한 조언을 하였다.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에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자문 역할을 수행하였다.
퇴임 후에는 개인 법률 사무소로 복귀하였으나, 케네디와 린든 B. 존슨 행정부에 비공식적인 조언자로서 영향력을 유지하였다. 1964년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1970년에는 회고록 《Present at the Creation: My Years in the State Department》로 퓰리처상 역사 부문을 수상하였다.
1971년 10월 12일 메릴랜드주 샌디스프링의 자택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