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둥간 혁명(回民起義, 회민기의 / Dungan Revolt)은 1862년부터 1877년까지 청나라 서북부 지역(섬서성, 감숙성, 영하 지역, 신강 지역 등)에서 발생한 대규모 무장 봉기이다. 주로 회족(回族, 후이족)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교도(당시 청조 문서에서는 '회민'이라 칭함)가 청나라 정부의 억압과 한족 관료의 부패, 민족·종교적 차별에 맞서 일으킨 운동이다. 러시아 및 서구 사료에서는 참가자들의 다수를 차지한 회족을 '둥간(Dungan)'이라 불렀기 때문에 '둥간 혁명' 또는 '둥간 봉기'로 표기된다.
배경 18세기 중반 이후 청나라는 서북 지역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으나, 현지 한족 관료와 지주들의 수탈, 이슬람교 내 분파(교문) 간의 갈등, 그리고 태평천국 운동(1851~1864)으로 인한 중앙 정부의 군대 분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민심이 악화되었다. 1862년 섬서성 화현(華縣)에서 한족과 회족 간의 무력 충돌이 발발한 것을 기점으로 봉기가 본격화되었다.
전개 과정
- 초기(1862~1866년): 섬서성, 감숙성 일대에서 회족 지도자들(마화룡馬化龍, 백연호白彥虎 등)이 독자적으로 봉기하여 지방 도시를 장악하고 청군과 대치했다. 봉기군은 종교적 결속력을 바탕으로 게릴라전과 성곽전을 병행했다.
- 확대 및 신강 전선(1864~1870년): 봉기는 신강(동투르키스탄) 지역으로 확산되어 야쿠브 벡(Yakub Beg)의 정권 수립과 맞물렸다. 내륙에서는 마화룡이 금집협(金積峽)을 거점으로 항전했으나, 1871년 좌종당(左宗棠)이 이끄는 청군(회군)에 의해 금집협이 함락되고 마화룡이 처형되면서 내륙 전선은 사실상 진압되었다.
- 신강 수복 및 종결(1871~1877년): 청나라는 1876년 좌종당이 신강 원정을 개시, 1877년 야쿠브 벡 정권을 무너뜨리고 신강 전역을 수복함으로써 15년간의 봉기는 완전히 종식되었다.
주요 인물
- 마화룡(馬化龍): 초기 봉기의 핵심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금집협에서 최후까지 항전하다 청군에 투항했으나 처형됨.
- 백연호(白彥虎): 감숙·신강 지역에서 활동하다 청군의 공세에 밀려 러시아 영토로 망명함.
- 좌종당(左宗棠): 청조의 진압 총사령관으로, '선수비 후진공(先守備 後進攻)' 전략과 회족 장수(마안량 등) 포섭을 통해 봉기를 진압함.
결과 및 영향
- 인명 피해: 전쟁, 기아, 질병, 학살 등으로 서북부 인구가 급감했으며(수백만 명 추정), 지역 경제 기반이 붕괴되었다.
- 정책 변화: 청나라는 진압 후 '화이융합(華夷融合)' 정책을 추진하며 회족에 대한 일정 부분 자치권을 인정하는 동시에(예: 마안량 가문의 세습 통치), 신강을 성(省)으로 승격시켜(1884년) 직접 통치를 강화했다.
- 둥간인의 중앙아시아 이주: 진압 과정에서 다수의 회족(둥간인)이 러시아 제국 영토(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로 피난·이주하여 현재까지 독자적인 공동체(둥간족)를 형성하고 있다.
역사적 평가 중국 사학계에서는 전통적으로 '회민 기의(回民起義)'라 부르며 농민 봉기의 일종으로 보거나, 민족 분열을 조장한 봉건 반동 운동으로 평가해 왔다. 반면 소련 및 러시아 사학계, 그리고 일부 현대 연구에서는 민족·종교적 자결 운동의 성격을 띠는 '둥간 혁명'으로 명명하여 평가한다. 최근에는 단일한 성격 규정을 넘어, 청조 말기 다민족 제국의 통치 위기, 이슬람 교파 갈등, 국제 정세(러시아의 남하 정책) 등이 얽힌 복합적 역사 사건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주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