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브로브니크 포위전은 1991년 10월부터 1992년 5월까지 유고슬라비아 전쟁 중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에서 발생한 주요 군사 작전이다. 유고슬라비아 인민군(JNA)과 몬테네그로 예비군, 세르비아의 준군사 조직이 크로아티아 남부의 역사적인 도시 두브로브니크를 공격하고 포위한 사건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에 대한 포격으로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으며, 유고슬라비아 전쟁의 잔혹성을 상징하는 사건 중 하나로 기억된다.
배경
1991년 크로아티아가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유지와 세르비아의 이익을 추구하던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은 크로아티아 내 세르비아계 주민 보호를 명분으로 크로아티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두브로브니크의 경우, JNA와 몬테네그로 지도부는 두브로브니크와 남부 달마티아 해안을 장악하여 크로아티아의 영토를 고립시키고, 나아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내 세르비아 점령 지역과의 연결을 시도하려는 전략적 목적을 가졌다. JNA는 두브로브니크에 크로아티아군 기지가 있다는 허위 주장을 내세웠으나, 당시 도시는 비무장 상태였다.
포위전의 전개
1991년 10월 1일, JNA와 몬테네그로 예비군이 두브로브니크 주변 지역을 공격하며 포위전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도시를 육상 및 해상으로 봉쇄하여 외부로부터의 보급을 완전히 차단했다. 크로아티아군은 수적으로 압도적인 열세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찰 병력과 지역 방어군을 중심으로 도시를 필사적으로 방어했다.
포위전 기간 동안 두브로브니크는 JNA의 집중적인 포격과 폭격을 받았다. 특히 1991년 12월 6일은 가장 격렬한 포격이 있었던 날로 기록되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구시가지가 집중적으로 공격받아 많은 역사적 건축물이 손상되거나 파괴되었다. 국제사회는 이 포격에 대해 강력히 비난했으며, 이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대한 국제적인 여론을 악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유엔과 유럽 공동체(EC)는 인도주의적 구호 활동을 시도했으나, JNA의 봉쇄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결과와 영향
두브로브니크 포위전은 도시와 주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포위 기간 동안 수백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으며, 수만 명의 주민이 피난길에 올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구시가지의 건물 56% 이상이 포격으로 손상되었고, 그중 9개 건물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 사건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비난을 불러일으켰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와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대한 외교적 압력으로 이어졌다. 또한, 이는 유고슬라비아 전쟁 중 발생한 전쟁 범죄의 주요 사례로 국제형사재판소(ICTY)의 조사를 받게 되었다. JNA 장교였던 파블레 스트루가르(Pavle Strugar) 장군과 미오드라그 요키치(Miodrag Jokić) 제독 등은 두브로브니크 포격에 대한 책임을 지고 ICTY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1992년 5월, 크로아티아군의 반격 작전인 '타이거 작전(Operation Tiger)' 등을 통해 JNA가 두브로브니크 주변 지역에서 물러나면서 포위전은 사실상 종결되었다. 도시 복구를 위한 노력은 수십 년간 이어졌으며, 현재 두브로브니크는 대부분 복원되어 세계적인 관광지로 명성을 되찾았다. 두브로브니크 포위전은 세르비아 민족주의와 유고슬라비아 연방군이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억압하기 위해 자행한 잔혹한 공격의 상징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