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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카리알라 군정청

동카리알라 군정청(핀란드어: Itä-Karjalan sotilashallinto, 영어: Finnish military administration in Eastern Karelia)은 제2차 세계대전 중 계속전쟁(1941~1944) 기간 동안 핀란드 육군이 소련의 카렐리야-핀란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KFSSR) 영토를 점령했을 때 설치한 임시 군사행정기관이다.

설치 배경과 존속 기간

동카리알라 군정청은 1941년 7월 15일 핀란드 최고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설립되었다. 핀란드군이 계속전쟁 개전 직후 소련 영토로 진격하면서 점령한 동카리알라 지역을 통치하기 위한 기구였으며, 1944년 여름 모스크바 휴전 협정에 따라 핀란드군이 철수하면서 해체되었다.

군정청의 설립 목적은 해당 지역을 장기적으로 핀란드령에 병합하기 위한 준비에 있었다. 1940년 겨울전쟁 종전 당시 맺은 모스크바 평화 조약으로 소련에 할양되었다가 1941년 핀란드군이 재탈환한 지역(카렐리야 지협 등)은 군정청 소관에 포함되지 않았고, 1941년 12월 9일 핀란드 직할령으로 합병되었다. 이에 따라 군정청의 통치 범위는 대략 라도가호와 오네가호 사이의 지역이 중심이었다.

조직과 구조

군정청은 핀란드 정부가 아닌 핀란드 육군의 통제 아래 운영되었다. 초기에는 아우누스(Aunus), 마아셀캐(Maaselkä), 비에나(Viena)의 세 개 구(piiri)로 나뉘었고, 각 구는 다시 여러 하위 지역(alue)으로 세분되었다. 마아셀캐 구는 1942년 후반에 폐지되어 그 하위 구역들은 인접 구로 이관되었다.

본부는 처음 핀란드 미켈리에 위치했으며, 1941년 10월 15일 요엔수로 이전한 뒤 1943년 11월 15일 최종적으로 페트로자보츠크(핀란드식 명칭으로 Äänislinna)로 옮겨졌다. 군정장관으로는 1941~1942년 배이뇌 코틸라이넨, 1942~1943년 J.V. 아라유리, 1943~1944년 올리 팔로헤이모가 각각 역임하였다.

주요 정책

군정청의 정책은 크게 다음과 같은 측면으로 요약된다.

첫째, 핀란드화(Fennicization) 정책이 추진되었다. 지역 내 지명 중 러시아식 명칭을 핀란드식으로 개명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페트로자보츠크가 당시 '러시아식으로 들린다'는 이유로 Äänislinna로 개명된 것이 있다. 길거리 이름은 핀란드의 주요 인물 또는 칼레발라와 같은 핀란드 고전 문학의 인물 이름을 따서 붙이도록 하였다.

둘째, 인종 정책이 시행되었다. 당시 점령 지역의 잔류 인구는 약 85,000명으로 추산되었으며, 전시 이전의 약 30만 명에 비해 크게 감소한 수치였다. 핀란드 당국은 잔류 인구를 핀란드계와 동족 관계로 간주하는 '국민적(national)' 인구와 러시아인·우크라이나인 등 '비국민적(non-national)' 인구로 분류하였다. 장기적으로 비국민적 인구를 독일 점령 지역으로 추방할 계획이 논의되기도 하였다.

셋째, 교육과 선전 정책이 시행되었다. '국민적'으로 분류된 7~15세 아동에게는 핀란드어 교육이 의무화되었으며, 1942년 말까지 초등학교 110개가 개설되어 10,000명 이상의 아동이 재학하였다. 점령 지역에서는 신문 《자유 카렐리아》(Vapaa Karjala)와 아우누스 라디오를 통한 선전 활동이 이루어졌다.

넷째, 수용소 운영이 이루어졌다. 점령 초기 지역 내 러시아계 주민 20,000명 이상이 수용소에 수용되었으며, 1941년 말에는 그 수가 약 24,000명에 달하였다. 수용소 생활은 열악했으며, 1941년 농작물 수확 실패로 인해 1942년 봄~여름 기간에 4,000~7,000명의 민간 수용자가 주로 굶주림으로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관련 학술 지적

핀란드의 전쟁 지도부는 전후 동카리알라 병합을 정당화하기 위한 학술적 저작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지리학자 배이뇌 아우어와 역사가 에이노 유티칼라가 집필한 《핀란드의 생활권》(Finnlands Lebensraum)과 역사가 얄마리 야콜라가 집필한 《핀란드의 동방 문제》(Die Ostfrage Finnlands)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학술 카렐리아 협회(AKS) 소속 인사들이 군정청의 초기 지도부에서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며 '대핀란드주의' 이념에 입각한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종결

1944년 소련군의 반격과 핀란드의 전쟁 수행 능력 상실로 인해 핀란드는 모스크바 휴전 협정을 체결하였고, 이에 따라 핀란드군은 동카리알라 지역에서 철수하였다. 군정청은 1944년 여름 해체되었으며, 해당 지역은 소련에 반환되었다. 이후 이 지역은 러시아 연방의 카렐리야 공화국 일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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