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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 효무제

동진 효무제(東晉 孝武帝, 362년 ~ 396년 11월 6일)는 중국 동진(東晉)의 제9대 황제이다. 성은 사마(司馬), 휘는 요(曜), 자는 창명(昌明)이며, 묘호는 열종(烈宗), 시호는 효무황제(孝武皇帝)이다. 재위 기간은 372년 9월 12일부터 396년 11월 6일까지이다.

362년, 동진의 제8대 황제인 간문제(簡文帝) 사마욱(司馬昱)의 여섯 번째 아들이자 어머니 이능용(李陵容)의 소생으로 태어났다. 365년 회계왕(會稽王)에 봉해졌고, 372년 7월 황태자에 책봉되었으며, 같은 날 아버지 간문제가 붕어하자 그 자리에서 즉위하였다. 즉위 당시 나이가 어렸기에 태후 저산자(褚蒜子)의 섭정을 받았고, 376년 성인이 된 이후 친정(親政)을 시작하였다.

재위 초기에는 권신 환온(桓溫)의 선위 요구 위기를 겪었으나 환온이 사망하면서 위기가 해소되었다. 383년에는 전진(前秦)의 부견(苻堅)이 대군을 이끌고 침공해왔으나, 사안(謝安)과 사현(謝玄)이 이끄는 동진군이 비수(淝水)에서 대승을 거두었다(비수대전). 이 전투로 동진은 서주, 연주, 청주, 사주, 예주, 양주 등을 수복하며 국력을 회복하였다.

효무제는 총명하고 서예를 좋아했으며 시 짓기에 관심이 많았으나, 실력은 조잡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초기에는 황제로서의 기량을 보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우인 사마도자(司馬道子)에게 정사를 위임하고 자신은 주색에 빠져 지냈다. 불교에 심취하여 승려와 비구니를 가까이 두었고, 신하들 간의 당파 싸움으로 동진의 정치는 혼란해졌다.

396년 11월 6일, 청서전(淸暑殿)에서 후궁들과 주연을 베푼 뒤 총애하던 장귀인(張貴人)에게 "너는 이제 30세가 넘었으니 버리고 다른 여자를 취하겠다"는 술김의 농담을 하였다. 이를 진담으로 받아들인 장귀인이 잠든 효무제를 살해함으로써, 재위 25년 만에 향년 35세로 사망하였다. 그의 뒤를 이은 태자 사마덕종(안제)은 지적 능력이 매우 부족한 상태였고, 이후 동진은 쇠퇴의 길을 걸었다. 능묘는 융평릉(隆平陵)으로, 현재 중국 강소성 남경시 자금산 서남쪽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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