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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는 1974년 12월부터 1975년 7월까지 약 7개월간 발생한, 박정희 유신 정권의 언론 탄압 과정에서 동아일보의 광고면이 백지 상태로 발행된 사건을 가리킨다.

배경

1972년 10월 유신 헌법이 발효된 이후 박정희 정권은 언론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였다. 정부는 기관원을 언론사에 상주시키고 기사에 사용된 어휘까지 검열하는 등 비판적 보도를 억압하였다. 이에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은 '자유언론수호대회'를 열고 외부 간섭 배제, 기관원 출입 거부, 불법 연행 거부 등을 내용으로 하는 '자유언론실천선언'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이후 동아일보 지면에는 그동안 보도되지 못했던 인권운동가나 야당 인사 관련 기사가 실리기 시작하였다.

경과

1974년 12월 중순, 정부는 동아일보의 주거래 광고주들을 압박하여 광고 계약을 해지하도록 하였다. 2008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결과, 당시 중앙정보부가 대형 광고주들을 불러 동아일보 광고를 취소하겠다는 서약서를 받아내고 소액 광고주들에게도 세무사찰 등의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12월 20일 한일약품이 광고 동판을 회수한 것을 시작으로, 12월 24일에는 럭키그룹 등 7개 광고주가 일시에 계약을 철회하였고, 이후 큰 광고가 전혀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이로 인해 1974년 12월 26일자 동아일보는 광고를 실어야 할 자리에 계약된 광고가 없어 백지 상태로 발행되었다. 이 현상은 이후 수개월간 지속되었다.

격려 광고 운동

동아일보는 1974년 12월 30일자 1면에 광고국장 명의로 격려 광고를 모집하는 광고를 게재하였다. 이에 시민들과 각종 사회단체, 정당 등이 정부의 언론 탄압에 반발하여 격려 광고와 성금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최초의 격려 광고 게재자는 당시 가택연금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언론의 자유를 지키려는 한 시민'이라는 익명으로 1975년 1월 1일자에 광고를 실은 것으로 2006년에 확인되었다. 1975년 5월까지 총 1만 351건의 격려 광고가 실렸으며, 금액으로는 약 5억 6,755만 원(당시 기준)에 달하였다.

기자 해직과 사태 종결

1975년 3월 8일, 동아일보 경영진은 경비 절감을 명목으로 18명의 기자를 해고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편집국장 송건호가 항의 사표를 제출하였고, 기자들은 신문제작 거부 농성에 돌입하였다. 3월 17일, 회사 측은 폭력배를 동원하여 농성 중이던 기자 130여 명을 강제로 축출하였다. 이후에도 해고는 계속되어 동아방송 관계자를 포함하여 총 134명이 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1975년 7월 16일경부터 광고가 정상적으로 게재되기 시작하면서 사태는 종결되었다.

영향

해직된 기자들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고, 이들을 주축으로 1988년 한겨레신문이 창간되었다. 2001년 국무총리실 직속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동아투위 사건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였고, 2008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건이 중앙정보부의 주도로 이루어진 조직적인 언론 탄압이었다고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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