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동명왕릉(東明王陵)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 역포구역 룡산리(용산)에 위치한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주몽)의 능으로 전해지는 고분이다. 북한의 국보 문화유물 제3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200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고구려 고분군'의 일부로 등재되었다. 고려시대부터 이 무덤은 동명왕의 무덤으로 전승되어 왔으며,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그 명칭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학계에서는 이 무덤이 실제 동명성왕의 능인지에 관해 이견이 존재하여 '전(傳) 동명왕릉'이라고도 부른다.
역사적 변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따르면 동명성왕은 재위 19년 만에 사망하여 용산(龍山)에 장사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고구려의 첫 수도는 졸본(卒本, 현재의 중국 랴오닝성 환인 지역)이었으므로, 원래 동명왕의 무덤은 졸본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평양의 이 무덤이 동명왕릉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부터로, 고구려와 발해 멸망 이후 졸본 지역에 대한 영유권이 상실되면서 고구려 건국지를 평양으로 보려는 인식이 확산된 데 기인한다.
고려시대에는 국가 차원에서 이 무덤에 어압(御押)을 내려 제사를 지냈으며, 초하루와 보름마다 관리를 파견하여 제사를 올리게 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역대 국왕들이 동명왕 무덤의 수축과 관리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고, 고종 때에는 '동명왕릉'으로 추봉하고 대대적인 개수 공사를 시행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도 조선총독부 주도로 중수가 이루어졌다. 1974년 북한 당국이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고, 1993년 5월 14일 김일성의 지시로 대대적인 개건(改建)이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구조와 특징
동명왕릉은 2단의 돌기단 위에 사각추형으로 흙을 쌓아 올린 돌기단 흙무덤(석실봉토분)이다. 기단돌의 높이는 약 150cm, 기초돌 높이는 약 15cm이며, 봉토의 높이는 약 650cm로 총 높이는 약 815cm에 달한다. 북한의 개건 이후 현재 봉분 높이는 약 11m로 조정되었다. 기단돌과 기초돌은 대부분 다듬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네 모서리의 돌이 특히 크다.
내부 구조는 석회암과 화강암을 다듬어 축조한 돌방(석실)으로, 널길(연도), 앞방(전실), 널방(주실)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무덤은 약 9° 서쪽으로 기운 남향이다. 널방은 정방형 평면에 꺾임천장 구조로, 44개의 석재로 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웠다. 벽체는 2단으로 쌓았으며, 네 벽은 안으로 5~6° 정도 경사지게 조성되었다. 바닥에는 두 장의 큰 화강암 판돌을 깔았고, 그 아래에는 삼화토와 숯층을 교대로 쌓아 배수장치를 마련하였다.
벽화로는 직경 약 12cm의 연꽃무늬(연화문)가 벽면과 천장에 약 4.2cm 간격으로 그려져 있었으며, 발굴 당시 약 641개가 확인되었다. 이는 고구려 벽화고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풍속화나 사신도와는 구별되는 특징이다.
묘주(墓主)에 관한 학계의 견해
이 무덤이 실제 동명성왕의 능인지에 관해서는 학계에서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북한 학계는 무덤의 구조가 국내성 시기의 적석총 양식과 평양 천도 이후의 석실분 양식의 중간 형태를 띠고 있으며, 무덤 인근 정릉사터에서 '정릉(定陵)', '능사(陵寺)'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출토된 점 등을 근거로 5세기 초 장수왕의 평양 천도 때 동명왕의 유해를 이장하여 조성한 능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 및 국제 학계 일각에서는 이 무덤이 동명성왕이 아닌 장수왕이나 문자명왕 등 다른 고구려 왕의 무덤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특히 광개토대왕릉비에는 동명성왕이 홀본(졸본) 동쪽에서 승천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원래의 능은 졸본에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다만 묘주가 누구이든 간에, 이 무덤은 고구려 왕릉급의 중요한 고분임에는 이견이 없다.
주변 유적
동명왕릉 주변에는 10여 기의 고구려 고분이 산재해 있으며, 무덤 앞에는 고려시대에 세워진 하마비(下馬碑)가 남아 있다. 이는 신분이 높은 사람이라도 무덤 앞에서는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비석이다. 또한 무덤 전방 약 120m 지점에는 고구려시대 사찰인 정릉사(定陵寺) 터가 발굴되어, 능을 수호하기 위한 능사(陵寺)였음을 보여준다.
참고 문헌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시조동명성왕
- 『고려사』 권58 지리3
- 『세종실록』 지리지
- 『신증동국여지승람』 권52
- 김일성종합대학, 『동명왕릉과 그 부근의 고구려유적』, 1976
- 김영관, 「고구려 동명왕릉에 대한 인식변화와 동명왕릉중수기」, 『고구려연구』 제20집, 2005
- 조영현, 「전동명왕릉의 묘주 비정」, 『과기고고연구』 제10호,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