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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댐

동강댐은 대한민국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거운리와 삼옥리 일원의 동강에 건설될 예정이었으나, 각종 논란 끝에 건설이 취소된 다목적댐이다. 영월 다목적댐(寧越多目的댐)이라고도 불린다.

동강은 한강의 상류에 해당하며 정선군 정선읍과 영월군 영월읍을 지나 흐르는 하천이다. 동강댐 건설 논의가 본격화된 계기는 1990년 9월 한강 대홍수였다. 당시 한강 전역에 400~500mm에 달하는 폭우가 쏟아져 126명이 사망하고 18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특히 영월군과 단양군에서는 약 700억 원의 재산피해와 1만 5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면서, 강원도 주민들은 정부에 댐 건설을 요구하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제3차 국토종합개발계획에 댐 건설을 반영하고, 1997년 9월 댐 건설 예정지를 공식 발표하며 영월댐 건설을 추진하였다. 사업 주체는 한국수자원공사와 건설교통부였다.

동강댐의 계획 당시 규모를 살펴보면, 총 저수용량 6억 9,800만 m³, 길이 235m, 높이 98m로 계획되었다. 사업 기간은 1998년부터 2001년까지였으며, 사업비는 1997년 기준 약 1조 656억 원으로 추산되었다. 계획상 용수공급 3억 6,700만 m³, 홍수조절 2억 m³, 연간 발전량 1억 2,600만 kWh의 효과가 기대되었다.

동강댐 건설을 둘러싸고 홍수 예방과 수자원 확보를 주장하는 정부 측과, 생태계 파괴와 안전성 문제를 주장하는 환경단체 및 지역 주민 측이 수년간 대립하는 갈등이 이어졌다. 건설교통부는 안정적인 수자원 공급과 홍수 예방을 위해 댐 건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며, 댐 건설에 따른 호우 피해 경감액이 연간 117억 원에 달하고 하류의 충주댐 홍수조절능력도 27% 향상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반대 측에서는 여러 문제를 제기하였다. 첫째, 수질 문제로, 환경부는 동강댐 건설 시 강물의 정체로 부영양화와 녹조가 발생하여 팔당호 수질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동강 유역의 지질이 석회암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수질이 알칼리성(pH 8~9)이며, 비소와 알루미늄이 식수 허용 기준치를 초과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폐광산에서 흘러나오는 중금속 폐수 문제도 거론되었다. 둘째, 홍수 조절의 실효성 문제로, 일부 전문가는 동강의 하곡이 좁고 협곡이 많아 댐을 건설해도 집중 호우 시 많은 수량을 저장할 능력이 없다고 지적하였다. 셋째, 지질학적 안전성 문제로, 댐 예정지 일대에 석회암 지층과 단층이 다수 분포하여 댐 건설에 부적절하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댐 건설 예정지 주변에서는 192개의 석회암 동굴이 조사되었으며, 일부 전문가는 동굴을 통한 물의 유출이나 지반 침하의 위험을 경고하기도 하였다. 당시 해당 지역은 지진 다발 지역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넷째, 생태계 보전 문제로, 환경부와 환경단체의 현장조사 결과 비오리, 원앙, 수달 등의 희귀 동물과 층층둥굴레, 연잎꿩의다리, 비술나무 등의 희귀식물이 확인되어, 댐 건설 시 이들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지역 주민들의 입장도 변화하였다. 처음에는 홍수 피해를 겪은 영월군 주민들이 댐 건설에 찬성하였으나, 이후 수몰지역에 대한 보상 문제와 댐 건설 추진 방식에 대한 불만으로 반대로 선회하였다. 정선군 주민들은 댐 건설 시 정선읍 시가지의 역류 및 침수 가능성 등을 이유로 반대하였다. 설문 조사 결과 지역 주민의 약 77%가 동강댐 건설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1999년 당시 강원도지사와 강원도의회 및 도내 시·군 의회가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고, 그린피스 등 국제 환경단체들도 반대 의사를 밝혔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초 홍수 피해 방지를 이유로 댐 건설에 찬성하는 입장이었으나, 1999년 8월 댐 건설에 부정적인 의견을 표시하였다. 2000년 3월 민주당이 댐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민·관 공동조사단이 2000년 5월 동강댐은 건설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6월 5일 환경의 날을 맞아 동강댐 건설을 전면 백지화한다고 선언하였고, 2000년 6월 백지화가 최종 확정되었다.

동강댐 건설 백지화는 대한민국에서 개발보다 환경 보존의 가치가 더 높게 평가된 최초의 사례로 평가된다. 이를 계기로 환경과 개발 간의 새로운 갈등 양상이 부각되었으며, 국민의 지지를 받은 환경 및 시민단체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백지화 이후 환경부는 동강 일대 약 65km²의 지역을 생태계 보존 지역으로 지정하였다. 2006년 집중 호우가 발생하자 동강댐 건설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기도 하였으나, 실제 건설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또한 2006년에는 수십억 원의 예산을 들여 작성된 영월댐 건설 타당성 종합검토 보고서 등 핵심 보고서들이 유실되었다는 보도가 있었으며, 국무총리실은 관련 보도가 사실임을 확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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