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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문화투쟁동맹

독일문화투쟁동맹(독일어: Kampfbund für deutsche Kultur, KfdK)은 바이마르 공화국 및 나치 독일 시기에 활동한 독일의 국민주의적·반유대주의 성향의 정치·문화 단체이다.

이 단체는 1928년 나치 사상가 알프레트 로젠베르크(Alfred Rosenberg)에 의해 '국민사회주의 독일 문화협회'(Nationalsozialistische Gesellschaft für deutsche Kultur, NGDK)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이후 1934년 '국민사회주의 문화 공동체'(Nationalsozialistische Kulturgemeinde)로 재조직되었으며, 이후 '독일 연단'(Deutsche Bühne)이라는 단체와 합병하여 독일문화투쟁동맹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 단체의 목적은 나치당 지도부의 이념에 부합하도록 독일의 문화생활을 개조하는 데 있었다. 이러한 활동은 이후 문화 감시 기관으로 기능한 로젠베르크청(Amt Rosenberg)의 설립과 궤를 같이하였다.

회원 규모는 설립 초기인 1929년 4월 약 25개 지역 조직에 약 300명에 불과했으나, 1933년 10월에는 약 450개 지역 조직에 약 3만 8,000명에 달하는 규모로 급성장하였다. 회원 및 지지자에는 반유대주의 문학사가 아돌프 바르텔스, 물리학자 필리프 레나르트, 작곡가 파울 그레너, 철학자 오이겐 헤리겔, 건축가 파울 슐체-나움부르크 등 나치 운동의 극우 성향 인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 단체는 1929년부터 1931년까지 기관지 《독일문화투쟁동맹 통신》(Mitteilung des Kampfbundes für deutsche Kultur)을 발행하였다. 또한 에리히 케스트너, 쿠르트 투홀스키, 토마스 만,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의 작가와 바우하우스 운동, 표현주의 미술가들을 적대적 대상으로 지목하는 문화 탄압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0년에는 에른스트 발라흐에 대한 공격 캠페인과 케테 콜비츠의 이른바 '증오 예술'(Hetzkunst)에 대한 공격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독일문화투쟁동맹의 활동은 전국적인 영향력을 지녔다. 1930년 튀링겐주의 내무·문화 장관이었던 빌헬름 프리크가 이 단체의 지역 지도자로서 바우하우스 양식의 건축가들을 해임하고, 바이마르의 성 미술관에서 '퇴폐 예술가'들의 작품을 제거하도록 지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또한 근대주의 작곡가들의 작품을 국가 지원 공연 프로그램에서 제외하고,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저서와 에이젠슈타인 등의 영화를 금지하는 조치에 관여하였다.

이 단체는 1933년 이후 나치 체제의 공식적 문화 통제 체계가 확립되면서 그 독자적 역할이 축소되었고, 최종적으로는 로젠베르크청 체계 내로 흡수·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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