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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은기

독은기(獨銀麒, 1910~?)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직후까지 활동한 한국의 영화 배우이다. 본명에 대해서는 여러 기록이 존재하는데, 일제의 영화인 등록 당시에는 본명을 '김영식(金永植)'으로 밝혔으며 1941년 당시 31세였다고 전해진다. 반면 중학 시절 함께 지냈던 역사학자 김성칠(1913~1951)의 기록에 따르면 본명은 '김춘득(金春得)'이었다고 한다. 대구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1930년대 전반기 대구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영화감독 이규환의 영화 제작을 돕다가, 1936년 이규환 연출의 사극 《그 후의 이도령》을 통해 연기자로 데뷔하였다. 이후 이규환 연출의 《나그네》(1937)에서 '삼수' 역을 맡아 "성격적인 역에 꼭 맞는 타입"이라는 평을 받으며 주목받는 배우로 자리 잡았다. 《군용열차》(1938), 《새 출발》(1939), 《창공》(1941) 등에 출연하며 이규환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1942년 민간 영화사들이 통폐합되어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법인 조영)가 출범한 이후, 독은기는 법인 조영의 연기부에 입사하여 《젊은 모습》(1943), 《조선해협》(1943), 《병정님》(1944), 《사랑과 맹세》(1945) 등 일제의 전쟁 지원을 선전하는 관제 영화에 다수 출연하였다. 이 시기 그의 배역들은 지원병 참전을 부추기거나 전쟁 동원을 정당화하는 내용이었다.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 영화 부문에 포함되었다.

광복 후에는 좌익 계열 영화인 모임인 조선영화동맹에 가담하여 중앙집행위원을 맡았으며, 《자유만세》(1946), 《똘똘이의 모험》(1946), 《새로운 맹서》(1947) 등에 출연하였다. 그러나 일제 말기의 친일 경력과 해방 직후 좌익 경력으로 인해 남한에서의 활동에 제약을 받았고, 가난과 병마에 시달렸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9월 26일, 서울 수복을 앞두고 월북하였다. 월북 이후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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