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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히데타다

도쿠가와 히데타다(일본어: 徳川秀忠, 1579년 5월 2일 ~ 1632년 3월 14일)는 일본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 전기에 걸친 무장이자, 에도 막부의 제2대 쇼군(재임: 1605년 ~ 1623년)이다. 초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셋째 아들로, 어머니는 사이고노쓰보네(西郷局)이다. 유년 시절의 이름은 조마루(長丸), 이후 다케치요(竹千代)라 불렸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한 자를 받아 히데타다(秀忠)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생애

1579년, 도토미국 하마마쓰성(현 시즈오카현 하마마쓰시)에서 태어났다. 형인 마쓰다이라 노부야스가 할복하고, 이복형 유키 히데야스가 도요토미 가문의 양자로 나간 뒤, 실질적인 적남(嫡男)으로서 처우받았다.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알현하고 원복(元服)하여 히데타다로 개명하였으며, 히데요시의 양녀인 오히메(小姫)와 약혼하였으나 오히메의 사망으로 혼인은 성사되지 않았다. 이후 1595년, 히데요시의 양녀인 오에요(아자이 나가마사의 딸)와 재혼하였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38,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나카센도(中山道)를 통해 진군하였으나, 시나노국 우에다성에서 사나다 마사유키의 농성전에 발목이 잡혀 본전에 늦게 도착하였다. 이에 대해 이에야스는 행군 중 군열을 문란하게 하고 병사를 피폐하게 한 점을 질책하였다.

1603년 이에야스가 쇼군에 취임한 후, 히데타다는 우근위대장(右近衛大将)에 임명되어 도쿠가와 종가의 상속자로서 지위를 확고히 하였다. 1605년 이에야스가 쇼군직을 히데타다에게 양도함으로써 히데타다는 제2대 쇼군이 되었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오고쇼(大御所)로서 스푼성(駿府城)에 거처하며 실권을 계속 쥐고 있었고, 히데타다는 에도성에 머물며 이에야스의 의중을 받든 이원적 통치 체제가 운영되었다.

1614년부터 1615년에 걸친 오사카 전투에서는 총대장으로 참전하여 도요토미 가문을 멸망시켰다. 이후 이에야스와 함께 무가제법도(武家諸法度)와 긴추나라쿠게쇼핫토(禁中並公家諸法度) 등의 법령 제정에 참여하였다.

친정(親政)과 업적

1616년 이에야스가 사망한 후, 히데타다는 쇼군 친정을 시작하였다. 막부의 중추로서 로주(老中) 체제를 활용하고, 기리시탄(그리스도교) 금압 정책을 강화하였다. 1616년에는 중국 선박을 제외한 외국 선박의 입항을 히라도(平戸)와 나가사키(長崎)로 제한하였고, 1622년에는 120여 명의 선교사와 일본인 신자를 처형하는 등 박해를 단행하였다. 또한 다이묘들에게 영지 안전을 보증하는 흑인장(黒印)・주인장(朱印状)을 발급하고, 서일본의 다이묘들을 대규모로 전봉(転封)하여 후다이 다이묘(譜代大名)를 서국에 배치하기 시작하였다.

1620년에는 딸 가즈히메(화子)를 고미즈노오 천황의 중궁(中宮)으로 입내시켜 황실과의 관계를 강화하였다. 1623년 쇼군직을 장남 이에미쓰에게 양도하고 오고쇼로서 실권을 계속 행사하였다.

오고쇼 시절과 최후

오고쇼 퇴임 후에도 실권을 유지하며 이에미쓰와의 이원 정치를 운영하였다. 1626년 상경하여 고미즈노오 천황의 니조성 행차를 맞이하였고, 같은 해 다이조다이진(太政大臣)에 임명되었다. 1629년 자의 사건(紫衣事件)을 통해 조정과 사원 세력을 통제하였으며, 손녀(가즈히메의 딸)가 메이쇼 천황으로 즉위하여 천황의 외척(外戚)이 되었다.

1631년경부터 건강이 악화되어 흉통(胸痛)에 시달렸으며, 1632년 3월 14일(간에이 9년 1월 24일) 에도에서 사망하였다. 향년 54세(만 52세). 법명은 다이토쿠인(台徳院)이며, 묘소는 도쿄도 미나토구의 조조지(増上寺)에 있다. 사후 정일위(正一位)가 추증되었다.

평가

도쿠가와 실기(徳川実紀)에서는 히데타다를 "어진 효성과 공손하고 겸허한 덕을 갖추었다"고 평가하였으나, 형 노부야스나 유키 히데야스 등이 무용(武勇)으로 칭송받은 데 비해 히데타다의 무장으로서의 평가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그러나 이에야스가 "수성(守成)의 시대"에 적합한 군주로 판단하여 후계자로 지명하였다는 견해가 있다. 정치적 측면에서는 무가제법도, 금중병공가제법도 등 각종 법령을 정비하고 기리시탄 금압, 무역 통제, 황실 견제 등을 통해 에도 막부의 기반을 확고히 다진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역사학자 야마모토 히로후미는 "정치적 자질에 있어 이에미쓰보다 훨씬 뛰어났다"고 평하였다.

가족 관계

정실(계실)은 아자이 나가마사의 딸이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양녀인 오에요(스겐인)이다. 자녀로는 장녀 센히메, 차녀 다마히메, 3녀 가쓰히메, 4녀 하쓰히메, 장남 도쿠가와 이에미쓰(제3대 쇼군), 차남 도쿠가와 다다나가, 5녀 가즈히메(고미즈노오 천황 중궁) 등이 있다. 측실 오시즈(浄光院) 소생의 4남 호시나 마사유키(아이즈 마쓰다이가의 시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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