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일본어: 徳川家康, 1543~1616)는 일본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걸쳐 활동한 무장이자 센고쿠 다이묘이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함께 '향토삼영걸'로 불린다.
1543년 1월 31일(덴분 11년 음력 12월 26일), 미카와국(현 아이치현) 오카자키성에서 마쓰다이라 히로타다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명은 마쓰다이라 다케치요였다. 어린 시절 이마가와 가문과 오다 가문 사이에서 인질 생활을 겪었으며, 1560년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전사한 후 독립하였다. 1562년 오다 노부나가와 기요스 동맹을 맺었고, 1566년 성씨를 마쓰다이라에서 도쿠가와로 바꾸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을 지휘하여 승리하였으며, 1603년 정이대장군(세이이타이쇼군)에 임명되어 에도 막부를 개창하였다. 1605년 쇼군직을 3남 히데타다에게 물려준 후에도 오고쇼(大御所)로서 슨푸(현 시즈오카)에 머무르며 정치에 참여하였다. 1614~1615년 오사카 전투를 통해 도요토미 가문을 멸망시키고 도쿠가와 가문의 지배를 확고히 하였다.
에도 막부의 기초를 다지는 과정에서 다이묘 통제를 위한 부역 부과, 조정에 대한 간섭권 확립(금중병공가제법도), 기독교 탄압(금교령), 네덜란드 및 영국과의 무역 추진, 조선과의 국교 회복(기유약조, 조선통신사 파견) 등 다양한 내정 및 외교 정책을 시행하였다.
1616년 6월 1일(겐나 2년 음력 4월 17일), 스루가국 슨푸에서 사망하였다. 사인은 위암, 매독, 각기병 등이 추정되나 정확한 원인은 분명하지 않다. 사후 닛코 동조궁에 안치되었으며, 도쇼다이곤겐(東照大権現)으로 신격화되었다. 그의 유훈인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를 필요 없다..."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일본 역사에서 '인내의 귀재'로 평가되며, 인내와 전략적 판단을 통해 난세를 극복하고 260년 간 지속된 에도 막부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기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