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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쓰나시게

도쿠가와 쓰나시게(일본어: 徳川綱重, 1644년 6월 28일 ~ 1678년 10월 29일)는 에도 시대 전기의 다이묘로, 가이 고후 번(甲斐甲府藩)의 초대 번주를 지냈다. 에도 막부 제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徳川家光)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제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쓰나(徳川家綱)의 동생이자 제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徳川綱吉)의 형이다. 또한 제6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노부(徳川家宣)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생애

쓰나시게는 1644년, 쇼군 이에미쓰의 측실 나쓰(夏, 순성원)의 소생으로 태어났다. 아명은 조마쓰(長松丸)였다. 당시 이에미쓰가 액년(厄年)에 해당하여 재액을 피하기 위해, 쓰나시게는 이에미쓰의 누나인 덴주인(天樹院, 센히메)을 양모로 삼았다. 이후 원복(元服)을 치르고 쓰나시게라는 이름을 받았다.

1651년 아버지 이에미쓰가 사망했을 당시 쓰나시게는 8세였다. 1661년(간분 원년) 가이 고후 번의 번주가 되어 35만 석의 영지를 다스렸다. 고후 번은 쇼군가의 후계자나 친족이 맡는 중요한 번으로 여겨졌으며, 쓰나시게는 '고후 사이쇼(甲府宰相)'라고도 불렸다. 또한 1654년에는 별저인 고후 하마야시키(甲府浜屋敷, 훗날의 하마리큐 은시정원)가 건축되었다.

쓰나시게는 형 이에쓰나에게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에, 이복동생 쓰나요시와 함께 차기 쇼군 후계자로 거론되었다. 쓰나시게가 쓰나요시보다 연장자였기에 유력한 후계 후보로 여겨졌으나, 쓰나시게는 병약하여 1670년(간분 10년)에는 병상에 누웠던 기록이 있다.

1678년(엔호 6년) 9월 14일, 형 이에쓰나보다 먼저 3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의 사후, 장남 쓰나토요(綱豊, 훗날의 이에노부)가 17세의 나이로 영지를 계승하였다. 쓰나시게 사망 2년 후인 1680년에 이에쓰나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동생 쓰나요시가 제5대 쇼군이 되었다. 이후 쓰나요시에게도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쓰나시게의 장남 쓰나토요가 쓰나요시의 양자가 되어 이에노부로 개명하고 제6대 쇼군이 되었다.

평가 및 유산

《부케간초키(武家勧懲記)》에 따르면 쓰나시게는 "자연스럽게 위엄이 갖추어져 있고, 강용(剛勇)하며, 호오(好惡)의 뜻이 없이 행적이 유연하고, 총명예지(聡明叡智)의 기량을 지녔다"고 평가되었다. 쓰나시게 사후에는 아들이 쇼군이 되면서, 사후에 정1위 태정대신 및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의 관위가 추증되었다.

쓰나시게의 유골은 도쿄 미나토구의 조조지(増上寺)에 안장되어 있다. 1959년 조조지 이전·개축 당시 유체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사지골 추정 신장은 160.1cm로 보고되었다.

가족 관계

쓰나시게의 정실은 니조 미쓰히라(二条光平)의 딸 류스인(隆崇院)이었고, 계실은 아야노코지 도시아키(綾小路俊景)의 딸 고규인(紅玉院)이었다. 측실로는 호라(保良, 장창원) 등이 있었다. 자녀로는 장남 쓰나토요(이에노부), 마쓰다이라 기요타케(松平清武), 우시마쓰(牛松) 등이 있다.

관련 작품

쓰나시게는 일본의 시대소설 등에서도 등장한다. 소설 《폭주재상 도쿠가와 쓰나시게》(폭れ宰相 徳川綱重, 다카이 레이 저)와 《로닌 와카사마 니이미 사콘》(浪人若さま新見左近, 사사키 유이치 저) 등에서 그가 등장 인물로 다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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