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 플랜(Dawes Plan)은 1924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독일에 부과된 전쟁 배상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립된 국제 경제 구제 계획이다. 이 계획의 명칭은 당시 미국 예산국장이었으며 이후 1925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찰스 G. 도스(Charles G. Dawes)가 위원장을 맡은 데서 유래한다.
배경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에 대해 약 1,320억 금마르크에 달하는 막대한 배상금을 부과하였다. 이는 독일 경제에 극심한 부담으로 작용하였고, 1923년에는 독일이 배상금 지불을 연체하자 프랑스와 벨기에가 루르(Ruhr) 지역을 점령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에 따라 독일에서는 초인플레이션이 폭발하여 화폐 가치가 사실상 붕괴되었고, 바이마르 공화국은 심각한 경제적·정치적 위기에 직면하였다.
주요 내용
도스 플랜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독일의 연간 배상금 지불액을 경제 상황에 맞추어 점진적으로 증액하는 방식으로 조정하였다. 첫해에는 10억 금마르크를 지불하고, 이후 경제 회복에 따라 1928년까지 연간 25억 금마르크로 증액하도록 하였다.
- 독일 경제 안정을 위하여 미국 등 국제 사회로부터 약 8억 금마르크 규모의 대규모 차관을 제공하였다.
- 독일의 통화를 라이히스마르크(Reichsmark)로 개혁하여 초인플레이션을 수습하고, 독일 제국 은행(Reichsbank)을 재설립하여 국제적 감독 아래 운영하도록 하였다.
- 프랑스와 벨기에 군대가 루르 지역에서 철수하는 조건이 포함되었다.
결과와 한계
도스 플랜은 1924년 4월 9일 발표되었고, 같은 해 8월 런던 회의에서 연합국과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간에 정식 승인되었다. 이 계획의 시행으로 독일 경제는 일시적으로 안정을 되찾았고, 1924년부터 1929년까지는 상대적 번영기를 맞이하였다. 또한 이는 1925년 로카르노 조약 체결과 독일의 국제연맹 가입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화해의 경제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도스 플랜은 독일의 총 배상금 액수 자체를 감축한 것이 아니라 지불 방식을 조정한 임시적 성격의 조치였다. 또한 미국의 차관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1929년 세계 대공황이 발생하자 미국이 차관을 회수하면서 독일 경제는 다시 붕괴하였다. 도스 플랜은 1929년 영 플랜(Young Plan)으로 대체·보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