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都, 道, 陶)는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성씨이다. 한자 표기에 따라 크게 세 가지 계통으로 구분된다.
都 (도읍 도)
「都」씨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도씨 계통으로,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인구 56,850명으로 집계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66위를 기록하였다. 본관은 성주(星州) 단본이며, 대한민국 내 도씨의 98% 이상이 이 계통에 해당한다.
성주도씨의 시조에 대해서는 다양한 기록이 존재한다. 「경술보(庚戌譜)」에 따르면 시조를 도계(都稽)로 보는데, 도계는 중국 전한(前漢) 시대 기주(冀州) 위군(魏郡) 여양현(黎陽) 출신으로, 한 무제 때 복파장군으로 여가(呂嘉)의 반란을 평정하고 도씨 성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의 후손인 도조(都祖)가 고구려에 동래하여 유리왕을 도왔다는 기록도 있다. 한편 「삼국사기」의 고구려 건국신화에는 동명왕의 맏아들 유리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도운 도조(都祖)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한편 다른 기록에 따르면 도진(都陳)이 고려 태조 왕건의 창업에 공훈을 세우고 성산부원군에 봉해졌다고 하나, 선계가 실전되어 고려 명종 때 전리상서(典理尙書)를 역임한 도순(都順)을 실질적인 기세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6세손인 도길부(都吉敷, ?~1388)는 고려 말 찬성사에 올랐으며, 조선 태조 이성계와 가까운 사이였으나 역성혁명에 반대하여 벼슬을 거부하고 낙향한 도응(都膺) 등의 인물이 알려져 있다.
성주도씨는 고려 시대에 재상급 인물을 다수 배출하며 권문세족으로 번성했으나, 조선 시대에 들어 가문이 쇠락하였다. 현재 성주도씨 인구의 다수는 대구광역시 일대에 연고를 두고 있다.
道 (길 도)
「道」씨는 본관이 고성(固城) 단본인 희귀 성씨이다. 2000년 기준 인구 약 609명으로 매우 적은 수이다. 1930년 국세조사 당시 제주도 북제주군 한림읍 옹포리에서 도응선(道應善) 씨의 1가구가 처음으로 확인되었으며, 「증보문헌비고」, 「도곡총설」, 「전고대방」 등 옛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는 비교적 후대에 나타난 성씨로 추정된다. 구체적인 시조와 연원에 대해서는 공개된 정보가 제한적이다.
陶 (질그릇 도)
「陶」씨는 주요 본관이 순천(順天)이며, 2015년 기준 인구 약 1,037명으로 집계되었다. 시조는 도구원(陶球元)으로, 원(元)나라의 진사 출신이었다. 1296년(고려 충렬왕 22년) 원나라 공주 창국대장공주 익리해아를 배행하여 고려에 들어온 후 귀화하여 전라남도 순천에 정착하였다고 전해진다.
「순천도씨김포세보」에 따르면 중국의 도씨 시조는 진(晋)나라 사람인 도단(陶丹)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의 아들 도간(陶侃, 257~332)이 진나라의 무장으로 오(吳)를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도간의 증손에는 「귀거래사」로 유명한 진나라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있다. 「조선씨족통보」에 의하면 도씨의 본관이 순천과 풍양을 비롯해 청주, 유곡, 죽청, 경주, 병양, 밀양 등 10여 본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나, 순천을 제외한 나머지 본관의 상계(上系)는 미상이다.
기타
한자 표기를 영문으로 전환할 때에는 일반적으로 "Do" 또는 "Doh"로 표기한다. 드물게 "Doe"로 표기하는 사례도 있으나, 영미권에서 "John Doe"가 익명자를 뜻하는 표현으로 널리 쓰인다는 점에서 혼동을 빚을 수 있다.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 도나라 왕족의 유민들이 국명을 성으로 삼은 데서 도씨가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