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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자유군단

덴마크 자유군단(덴마크어: Frikorps Danmark, 독일어: Freikorps „Danmark")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의 무장친위대(Waffen-SS)에 소속되었던 덴마크인 지원병 부대이다. 독일군의 소련 침공(바르바로사 작전) 직후인 1941년에 창설되어 동부전선에서 활동했으며, 1943년 해체되었다.

창설 배경

덴마크는 1939년 나치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체결했으나, 1940년 4월 9일 독일군의 점령을 받았다. 덴마크 정부는 "평화적 점령"을 수용하고 독일에 대한 외교적·경제적 협력 정책을 펼쳤다. 19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독일은 덴마크에 군단 편성을 요청했다. 1941년 6월 29일, 덴마크 민족사회주의노동자당(DNSAP)의 기관지 『페드렐란데트』(Fædrelandet)가 덴마크 자유군단의 창설을 선언했다. 덴마크 외무장관 에리크 스카베니우스는 독일 측과 협정을 맺어, 덴마크 왕립 육군의 장교와 병사들이 해당 군단에 자원 입대할 경우 휴가를 받고 계급을 유지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덴마크 자유군단은 1941년 무장친위대가 설립한 여러 "민족 군단" 중 하나였다.

활동

  • 1941년 7월 말 약 1,000명의 신병이 함부르크의 랑겐호른 막사로 보내져 기초 훈련을 받았고, 이후 폴란드 오빈스카로 이동했다.
  • 1942년 5월, 데미얀스크 부근에서 동부전선 전투에 투입되었다.
  • 초대 지휘관 크리스티안 페데르 크리싱 중령은 나치 이데올로기에 대한 충성도 부족을 이유로 1942년 2월 해임되었다. 이후 크리스티안 프레데리크 폰 샬부르크가 지휘를 이어받았으나 1942년 6월 전사했고, 독일인 후임 지휘관 한스-알베르트 폰 레토우-포어베크도 며칠 뒤 전사했다.
  • 덴마크인 장교 크누드 보르게 마르틴센이 이후 지휘를 맡았다.
  • 1942년 12월, 벨리키예 루키 전투에 참전했다.
  • 1943년 4월 전선에서 철수하여 바이에른의 그라펜뵈어로 이동했고, 1943년 5월 6일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 해체 후에는 SS 기갑척탄병 연대 24 "덴마크"로 개편되어 제11 SS 의용 기갑척탄병 사단 "노르트란트"에 통합되었다.

규모와 성격

전쟁 기간 동안 총 약 6,000명의 덴마크인이 덴마크 자유군단에 복무한 것으로 추산되며, 이 중 77명은 덴마크 왕립 육군 장교였다. 1998년의 연구에 따르면 단원의 평균적 특성은 덴마크 나치당 당원이거나 덴마크 내 독일계 소수민족 출신이었으며, 사회적 배경은 매우 광범위했다고 한다. 덴마크 역사가 보 리데고르에 따르면 당시 덴마크 민간인과 군단 사이의 관계는 극도로 냉랭했으며, 휴가차 귀국한 군단원들은 시민들로부터 큰 경멸을 받아 잦은 충돌이 발생했다. 1941년 기준으로 약 1만 2,000명 이상이 처음 지원했으나, 절반가량은 현역 복무에 부적합한 것으로 판정되었다.

덴마크 정부의 역할 논쟁

덴마크 정부가 자유군단 창설에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에 관해서는 오늘날에도 논란이 있다. 일부 학자는 이 군단이 자국 정부의 공식 승인을 받은 유일한 외국인 지원군단이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학자들은 덴마크 정부가 창설을 승인했을 뿐 스스로 창설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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