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로쿠 가스 폭발 사고(일본어: 天六ガス爆発事故)는 1970년 4월 8일 저녁,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기타구(당시 대요도구) 덴진바시 6초메(통칭 '덴로쿠') 일대의 오사카 시영 지하철(현 오사카메트로) 다니마치선 덴진바시스지 6초메역 건설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가스 폭발 사고이다. 이 사고로 79명이 사망하고 420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일본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가스 폭발 사고로 기록되어 있다.
사고 경위
1970년 4월 8일 17시 15분 무렵, 공사 현장 지하에서 노출되어 있던 도시가스용 중압관과 저압관의 수수기(水取器) 이음새 부분이 빠져 도시가스가 분출되었다. 마침 지나가던 오사카 가스의 순찰차가 이를 발견하여 사고 처리차가 출동하였으나, 현장 부근에서 엔진 고장이 발생하였다. 처리차가 엔진을 재시동하기 위해 전지 전동기를 돌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꽃이 복공판 틈새로 새어 나온 가스에 인화되어 17시 39분 무렵 화재가 시작되었다. 이후 17시 45분 무렵, 사고 처리차의 불이 복공판 직하의 지하에 가득 찬 도시가스에 인화되어 대폭발이 일어났다.
폭발 당시 공사 현장의 도로상 길이 약 150m, 폭 약 10m에 걸쳐 부설되어 있던 약 1,000장의 복공판 대부분이 위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날아가면서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사고 발생 시각이 귀가 러시아워와 겹쳤고, 현장 주변에 구경꾼과 오사카 가스 직원, 소방대원, 경찰관 등이 모여 있던 상황이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지적된다.
피해 규모
사망자 79명, 중경상자 420명이 발생하였다. 가옥 피해는 전소·반소 26호, 폭풍에 의한 손괴 336호에 달했으며, 폭풍으로 문이나 창문 유리가 파손된 인근 가옥은 1,000호 이상이었다. 피해자의 대부분은 공사에 직접 관련이 없는 일반 통행인이었다.
사고 원인
사고 원인으로는 가스관의 이음새 강도가 통행 차량의 하중과 지하철 공사 자체의 영향 등으로 저하되었고, 이음새에 대한 이탈 방지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가스관이 빠져나간 것으로 분석되었다.
사고 이후의 조치와 영향
사고 발생 후 오사카부 경찰 본부는 현장 서쪽 약 200m 지점의 기타시민회관에 현지 경비 본부를 설치하고, 오사카시도 재해 대책 본부를 설치하여 대응에 임했다. 희생자의 사체는 인근 사찰 등에 안치되었다.
1971년 6월 오사카부 경찰 본부가 강제 수사를 개시하여, 같은 해 7월 23일 오사카시 교통국 직원 3명, 테켄 건설 직원 5명, 하청업자 종업원 1명, 오사카 가스 종업원 2명 등 총 11명이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되었다. 재판에서는 오사카시와 테켄 건설이 오사카 가스의 관리 책임을, 오사카 가스가 오사카시의 관리 책임을 각각 주장하며 책임 소재가 쟁점이 되었다. 1심(1985년 오사카 지방법원)에서는 테켄 건설 직원과 오사카시 교통국 직원에게 집행유예형이 선고되었고, 2심(1991년 오사카 고등법원)에서도 공소가 기각되었다.
이 사고를 계기로 굴착에 의해 주위가 노출된 도관의 방호에 관한 규정(가스 사업법 시행령 제77조·제78조)이 제정되어, 노출 부분 양단의 지반 붕괴 우려 확인, 누출 방지 조치, 온도 변화에 따른 도관 신축 흡수·분산 조치, 위급 시 가스 차단 조치 등이 규정되었다. 또한 오사카 시내의 가스 밸브 점검 및 퓨즈 가스밸브 개발이 이루어졌다.
오사카시와 오사카 가스, 공사를 하청받은 테켄 건설이 희생자 유가족과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진행하였다.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비가 인근 고쿠분지 공원에 세워졌다.
당시 오사카부 스이타시에서 개최 중이던 일본 만국 박람회(오사카 만박)의 '가스 파빌리온'은 이 사고의 영향으로 일시 공개가 중지되었다. 사고 현장을 포함한 다니마치선 공사 구간(히가시우메다~미야코지마)은 1974년 5월에 개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