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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즈카 기시에이

데즈카 기시에이(일본어: 手塚 岸衛, てづか きしえ, 1880년 7월 13일 ~ 1936년 10월 7일)는 일본의 교육자이다. 메이지·다이쇼·쇼와 초기에 걸쳐 활동한 인물로, 일본의 '다이쇼 신교육' 운동에서 자유교육론을 주창한 대표적인 교육가로 알려져 있다.

생애와 경력

데즈카 기시에는 일본 도치기현(栃木県) 출신이다. 메이지 41년(1908년) 도쿄고등사범학교(東京高等師範学校)를 졸업한 후, 후쿠이사범학교(福井師範学校), 군마(群馬), 교토여자사범학교(京都女子師範学校) 등의 교사를 거쳤다. 다이쇼 8년(1919년) 지바사범학교 부속초등학교(千葉師範学校付属小学校)의 주임(主事)으로 부임하여, 도쿄고등사범학교 출신의 교육학자 시노하라 스케이치(篠原助市)의 영향을 받아 자유교육을 실천하였다.

지바사범학교 부속초등학교에서 데즈카는 교과의 자기학습주의(自学主義)의 철저, 과외적 자유학습, 학교 자치회의와 학급 자치 등 세 영역에 걸친 자주·자유교육을 시행하고, 시험과 통지표(성적표) 폐지 등의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를 통해 전국적으로 자유교육 운동의 지도자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주요 활동

1921년(다이쇼 10년) 대일본학술협회가 주최한 '교육학술연구대회'에서 이른바 '8대 교육주장' 중 하나로 '자유교육론'을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 1924년(다이쇼 13년) 3월에는 잡지 《자유교육》(自由教育)을 창간하였다.

1926년(다이쇼 15년) 지바현 오타키중학교(大多喜中学校) 교장이 되었으나, 배속 장교(配属将校)와 군인 교사에게 선동된 학생들의 교장 배척 운동이 발생하여 사직에 몰렸다. 이 사건은 '자유교육 억압 사건'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지유가오카 학원 창립과 사후

1928년(쇼와 3년) 도쿄에서 중학교(구제)·소학교·유치원으로 구성된 자유가오카학원(自由ヶ丘学園)을 창설하였다. 이 지유가오카라는 지명은 데즈카가 설립한 학원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1년 문부성으로부터 중학교 인가를 받았다.

그러나 1936년 데즈카가 57세의 나이로 병사하면서 학원은 경영난에 빠졌다. 이후 중학교 부문은 사회학자 후지타 기사쿠(藤田喜作)에게 넘겨졌고, 유치원과 소학교 부문은 교육가 고바야시 소우사쿠(小林宗作)에게 인계되어 '도모에 학원'(トモエ学園)으로 이어졌다. 도모에 학원은 이후 구로야나기 테츠코(黒柳徹子)의 저서 《창가의 토토》(窓際のトットちゃん)의 배경이 된 학교로 널리 알려졌다.

주요 저서

대표적인 저서로는 《자유교육진의》(自由教育真義, 1922), 《국어독본의 자유연구》(國語讀本の自由研究, 1925), 《실연학교극》(実演学校劇, 1934) 등이 있다.

역사적 평가

데즈카 기시에이의 자유교육론은 다이쇼 신교육 운동의 핵심적인 흐름 중 하나로 평가되며, 1910~1920년대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의 교육계에도 수용되어 연구된 사례로 보고되고 있다. 그의 교육론은 '자유'라는 개념에 대한 해석상의 논쟁을 낳기도 하였으며, 당시에도 상당한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참고 자료

검증에 사용된 주요 출처로는 일본어 위키백과, 일본 인명사전(20세기 일본인명사전, 디지털판 일본인명대사전), 한국어 위키백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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